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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Jan 26. 2024

어느날 남편도 입덧을 시작했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하여

여보, 아침에 토했어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태아는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째서 남편 당신이 힘들어 하는지. 

처음엔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났겠거니, 혹은 과식을 해서 그랬겠거니 싶었는데 아니었다.

임신 8~9주차 때 격렬하게 토덧을 겪고, 

남편이 퇴근 후 내가 토하는 모습을 수차례 본 것이 엊그제같은데

어느날부터 본인도 아침이면 매스껍고 힘들다고 토로해왔다. 

여느 임산부들이 신 맛이 나는 사탕을 입덧 완화를 위해 갖고 다니듯, 

남편 당신도 캔디나 츄잉껌을 들고다니기 시작했다. 

정도가 심할 때는 지하철 타고 출근하던 중 내리거나 혹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고 한다. 

출근하자마자 탕비실로 직행해서 위장에 뭐라도 욱여넣으면 그나마 살 것 같다고 했다. 


쿠바드 증후군이 뭐야?


위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정신분석학 용어가 있다. 바로 '쿠바드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이는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이 입덧을 겪는 현상으로, 

'알을 품다'는 의미인 프랑스어 'Couver'에서 파생된 단어다. 

처음 주창된 연도가 1965년이라고 하니, 용어가 생긴 지 거의 환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증후군을 겪는 남자들은 아내의 임신 3개월 경에 가장 심하다가 자연스럽게 약해지고,

임신 말기가 되면 다시 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 임산부처럼 배가 불러올 수 있고, 산후우울증까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흔하게는 자기가 임신한 것처럼 헛구역질, 매스꺼움, 요통, 감정기복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그냥 남편이 나 대신 임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랬다면 아마 내가 지금 남편이 겪듯, 쿠바드 증후군을 겪지 않았을까?


남편이 아픈 건 걱정되지만 묘하게 한편으로는 뭔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난임치료 과정에서는 주로 나만 병원을 다니며, 약 먹고 주사 맞아가며 힘들어했는데,

임신 중엔 마치 고통 분담을 하는 것 같달까?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군' 하는 생각에 모종의 동지 의식과 공동체 의식마저 느껴진다.


쿠바드 증후군의 원인은 딱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자연스럽게 사라진단다.

그러니 반년 정도만 잘 버티시라고 하는 수밖에-

이러나 저러나 부모됨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복직 후, 2주 동안 남편을 보지 못한 적이 있다. 

임신 전 주말부부 생활할 때만 해도, 내가 갑갑해서 주말마다 고향으로 오가곤 했는데, 

몸이 무거워져가는 지금은 장거리 이동이 퍽 부담스러워서 가질 않았다. 

임신 중기가 되니 자연스레 토덧은 완화되어 갔는데,

간만에 남편이 나를 보러 근무지 근처로 찾아왔을 때 다시금 입덧의 기운이 올라왔다가,

그가 떠나고 며칠 뒤에 다시 구토 증상이 완화되었다.


어쩌면 입덧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서로의 페로몬 내지 호르몬 같은것 말이다.


#입덧 #임신 #출산 #남편입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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