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삶은 유쾌하다. 또 다른 얼굴의 내일이 우리를 계속 기다려주니까.
킨텍스사거리교차로 중간지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강렬한 권태를 느꼈다. 정말이지 앞 뒤 맥락도 없이, 어처구니없게도 열정을 잔뜩 품은 참을 수 없는 권태를 느꼈다.
익숙한 교차로에서 목적지를 잃었고, 익숙한 편의점, 익숙한 골목길, 익숙한 신호등, 익숙한 매화나무, 고즈넉한 호숫가의 벤치에게조차 권태로움을 느꼈다. 백화점 직원의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친절에도 부조리함을 느꼈고, 간혹 찾아 안식을 찾던 동네서점에서조차 참을 수 없는 권태를 느꼈다. 곁을 스치는 친밀한 이들의 평온한 미소에서조차도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각형의 획일화된 아파트에 질렸고, 위로 솟구쳐있는 정형화된 계단에 숨 가쁘게 또 질려버렸고, 똑같이 생긴 문짝에, 똑같은 형상을 한 채 매달려 있는 도어록에 다시 한번 질렸고,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 내부 모습에 또 질렸다. 영감을 자극하며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도 짜증스럽게 뜨겁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왜 익숙한 모든 것들에 구토가 날 정도로 질려버렸고, 반항심이 생겼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기억의 파편들을 쪼개며 찾아든 이해할 수 없는 건망증처럼, 동시대에 존재하지도 않는 카뮈처럼, 나는 왜 갑자기 생뚱맞게 부조리함에 반항심이 생겼을까.
하지만,
그것들의 어디에서도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분히 주관적이긴 해도 적어도 이 세계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들고일어나지도 않았고, 이슈화조차 되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들은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그곳에 그 자리에 그 모습대로 있었다.
그런데, 왜 나만 갑자기 변한 것일까. 우습게도 내가 갑자기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조차도 없다. 그들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나 자신이 그들에게 부조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에게 합리적이기를 강요할 뿐이다. 씨알도 안 먹히는 헛 된 욕망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정작, 내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저 내가 지지고 볶고, 미움과 사랑을 주고받고, 변덕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노란 꽃잎이 한 개 밖에 남아있지 않은, 작은 미니 화분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뜬금없이 찾아온 이 알 수 없는 권태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느꼈던 그 순간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그것들이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느끼지만, 그것들은 예전이나 지금처럼 자신들이 부조리하다고 느끼지도 않을뿐더러, 최소한 자신들이 무의미하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지금의 삶이 여전히 정상적이고 의미 있는 것처럼 굴러갈 것이지만, 나만 어느 순간, 그 구조자체가 너무나 명백하게 비합리적이고, 피상적이고, 진실하지 않다고 여겨질 뿐이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부조리함을 안고 살아갈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그 너머의 어떤 진짜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 너머에 어떤 진짜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사실은,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이 순간 자체도 부조리함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조리함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섰다고 여겨졌던 카뮈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자체도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진실과 모순은 항상 자각이라는 가장 깊은 심연아래 공존한다.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세상은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우리의 삶 자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은, 똑같은 대상에게 너무나도 합리적이라고, 부조리하지 않다고 박수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삶은 참으로 유쾌하다. 또 다른 얼굴의 내일이, 우리를 계속 기다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순이 바로 삶의 유쾌함이다. 세계는 그냥 세계일 뿐이다. 나는 그저 부조리함을 느꼈던 한 순간의 인간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카뮈의 말처럼, 부조리가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는 부조리의 진실을 의식하면서, 자기 창조를 실현하는 창조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킨텍스사거리교차로에 서있다.
초록불이 신호등에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세계의 모든 것들에게, 다분히 합리적이라고 부조리하지 않다고 박수를 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