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조림을 먹을 것인가,
고등어구이를 먹을 것인가.

인생의 디저트까지 챙겨 갈치골목을 벗어났다.

by 윤수현

나는 매번 이 골목에만 오면 길을 잃었다.

이리저리 빙빙 돌다가 결국엔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만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남대문 시장 갈치골목은 허기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나의 소소한 욕망에 꼭 한 두 번씩 밀당을 헤댄다.

결국, 오늘도 많고 많은 플러팅을 물리치고, 애초에 원했던 상대는 아니지만, 간판 주변으로 6시 내 고향을 포함, 방송에 출현했던 무수한 홍보물에 낚여 대기번호표를 받아 들었다. 대기번호 5번.


나는 왜 갈치조림이나, 고등어구이가 당기면 굳이 남대문시장의 이 골목을 생각해 낼까.

구구절절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사람 냄새나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생선구이 냄새와 갈치조림 냄새가 넘쳐흐르는, 몹시 불규칙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세련되지 않아서 이질감이 덜한, 그래서 정겹고 편안한 이 골목이 그냥 좋아서다. 매번, 갈치조림을 먹을 것이냐, 고등어구이를 먹을 것이냐. 행복한 결정장애에 빠지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누추한 이 골목이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다양한 반응이 일어난다. 뇌의 보상시스템이 활성화되며 도파민이 증가해서,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하고, 그 경험을 다시 반복하고 싶게 만든다. 편도체는 음식에 대한 감정 반응을 처리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기는 감정을 더욱 강화하고, 해마는 그 경험을 기억하고 다음에 유사한 상황에서 그 경험을 다시 불러오고,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준다.


세상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하면 무엇을 더 바랄까.


우리는 모두 뇌 속에 각자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문득문득, 남대문시장의 갈치골목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어릴 적 엄마가 해주셨던 갈치조림, 고등어구이를 가족들과 둘러앉아 행복하게 나누어 먹었던 맛있는 기억과 감정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득, 엄마 냄새나는 기억을 불러오고 싶을 때, 갈치골목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내가 행복한 결정장애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으면 갈치조림을, 고소한 단백질의 감정과 추억의 맛이 그리운 날이면 고등어구이 쪽으로 로테이션 플랜을 짜보지만, 갈치골목에만 들어서면 나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기력해지고 만다. 사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택하든, 만족할 확률 백퍼센트라서 결과에 큰 의미는 없다.


행복한 결정장애로 난항을 겪고 있는 대기 중에, 초로의 여인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 세 분, 정겹다. 두툼한 갈치조림 뚝배기를 한 개씩 앞에 놓고, 서로의 앞 접시에 반찬을 챙겨주면서 익숙한 듯 천천히, 아주 낮은 소리로 수다도 떨며, 찰지고 맛깔나게 갈치조림과 생선구이를 드시는 모습에 입안 가득 침이 고여왔다.


수저를 드는 손엔 세월이 묻어 있었고, 그 조용한 배려엔 오랜 우정이 담겨 있었다. 흑백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자체로 삶의 여유와 정이 느껴졌다. 그녀들의 모습에 오래된 삶의 풍경들이 겹쳐지면서 뭉클한 무언가가 가슴언저리까지 올라왔다. 아마도 그녀들에겐 갈치조림이나 생선구이가 그냥 음식이 아니라 우정과 추억, 향기 어린 삶의 여정 같은 게 담겨 있을 것이다.


갈치조림 냄새가 공기처럼 퍼지는 그 좁은 식당 안에서 그녀들의 식사는 소박했지만, 그 장면은 너무도 찬란했고, 싱거우리만치 단순했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초로의 백발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대기 중인 나의 뇌리에 공존했었던 것 같다.


"언니, 커피 줘야지!."


애교 어린 어필로 일회용 종이컵에 믹스커피 한 잔씩을 챙겨 들고, 호호거리며 식당문을 나서는 유쾌한 그녀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호호거리며 늙어가야지, 맛있게 늙어가야지, 유쾌하고 따뜻하게 삶의 여유와 품위까지 다 갖추고, 호호거리며 늙어가는 맛을 느껴봐야지. 머지않은 미래에 관한 조용한 선언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갈치조림과 고등어구이 두 가지를 모두 주문했다.

선택은 포기했지만, 만족은 두 배였다. 초로의 백발 여인들 덕분에, '호호거리며 늙어가는 맛'이란 디저트까지 챙겨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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