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만의 의미인 연민으로 그녀를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했다.
미스터리하고 극적인, 게다가 어떻게 보면 불합리하다고까지 여겨지는 그 죽음에 관해서 전해 들은 것은, 새해를 맞아 들뜨던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아 맹숭맹숭한 일상으로 돌아가던 어느 해 1월 중순쯤이었던 것 같다.
얼음조차 움츠러드는 쨍한 겨울 추위가 한껏 몰려있는 어스름한 새벽에, 목욕바구니를 들고 대문을 나서다 집 앞에서 후진하는 트럭에 치여 맞이한 죽음.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이없는 죽음이다.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이없는 죽음까지도 그들은 왜 닮아있는 것일까.
한옥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제법 넓은 내부는 낮은 천장을 지닌 여러 개의 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는데, 문을 없애고 넓은 홀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옛날 한옥을 그대로 사용해서인지 방문턱이 높아 들어가고 나오는데 예기치 않은 주의와 힘이 들어가야 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소음과 함께 젓가락질을 헤대고 있었다.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었는데도 손 맛이 좋아서인지 입소문을 타고 단골들이 많은 듯했다. 올 때마다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출입구 안쪽으로 들어가 주방 쪽이랑 가장 가까운 마야 치첸이짜의 모양만 닮은 기둥에 기대어 안쪽을 살폈다. 작고 야리야리한 체구에 몸집보다 훨씬 큰, 무게감이 느껴지는 꽃무늬가 새겨진 은색 쟁반을 힘겹게 들고, 턱이 높은 문지방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그녀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주 가끔 그녀가 못 견디게 보고 싶으면 기둥 뒤에 숨어 그녀를 지켜보았다. 방해하지 않고 그녀를 그나마 오래 볼 수 있는 곳이 기둥 뒤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몇 번의 눈칫밥을 먹다가 체할 뻔하고부터였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어린 내가 한 번씩 오기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면 몹시 허둥댔다. 살갑게 눈도 길게 마주치지 못했고, 손짓은 자꾸만 엇나갔으며, 발걸음은 더 바빠졌고, 고개는 자꾸만 불안스레 안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러면서 낮은 소리로
배고프지? 밥 먹어야지? 밥 먹어야 할 텐데..라고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지 모를 말을 들릴 듯 말 듯했다.
그녀는 안쪽에 대고 목소리를 높여
얘가 또 왔네. 어떻게 잘 찾아왔네? 하며 허둥댔다.
또 왔어?
안쪽에서 카랑카랑하면서도 높낮이가 없어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타났다.
햇빛이라곤 본 적도 없는 것처럼 핏기 없는 허여멀건 얼굴에 기미 같은 주근깨가 양볼에 얇게 퍼져 있고, 기억나지 않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얼굴인데, 유독 그 눈빛만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잊히지가 않는다.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귀찮아 죽겠다는 눈빛, 방해하지 말고 제발 빨리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눈빛, 평생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었던 그 눈빛은 토할 것 같은 미제 분 냄새와 함께 했다.
내가 이모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내가 이모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방에 앉아 허둥대는 그녀가 차려준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눈치 보며 챙겼을 노릇하게 구워진 굴비가 한편에 놓여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라고 그녀가 정신줄을 부여잡고 챙겼을 꾹꾹 눌러 담은 흰 밥에, 나물이며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내가 앉은 앞쪽으로 몰려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몹시 배가 고팠지만, 한 번도 그 밥상을 다 비웠던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먹은 것도 없이 항상 명치끝이 꽉 막혀서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통증에 절여진 식은땀을 찔찔 흘려야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공식적으로 공표된 단어 중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이모라는 단어다. 혐오라는 단어와도 닮아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나.
내가 아주 어릴 적 그녀들은 우리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배려에서였다. 엄마의 언니와 엄마의 동생이었다. 그녀들은 어린 우리 형제들을 돌보는 일을 했고, 집안일을 도왔으며, 동생을 낳은 엄마를 보살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들은 엄마처럼 선하지도 순진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챙겨 들고 사라졌다. 아버지의 퇴직금을 불려준다는 명목하에 주워 들고, 엄마의 언니는 서울로, 엄마의 동생은 미국으로 날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당신의 꿈도, 장밋빛 인생도 하루살이의 꿈처럼 날려버렸고, 엄마는 평생을 아버지 앞에서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엄마의 동생은 그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고, 엄마의 언니는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받아 팔았는데, 수완이 좋았는지 성공했고, 을지로 뒷골목에서 제법 크게 백반집을 하다가 한정식으로 발전했다.
이후로 동력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연이은 사업도 실패로 이어졌고, 엄마는 결국 내가 증오하는 을지로 그녀의 식당에서 머물며 온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엄마는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희생을 해야 했지만, 묵묵히 버텨내셨고, 연약하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견디셨다. 하지만, 결국엔 내가 중학교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지고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의 황망해서 어이없고, 억울하고 허무해서 화가 나고, 너무나 슬퍼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던 그 죽음과 어이없게도 어느 부분 닮아있는 엄마 언니의 죽음 앞에서 나는 절망했다. 그녀들의 운명 앞에서 몸서리쳤다.
누군가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흠결이 사라지거나 화장터의 연기처럼 자연스레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대상이 현실 세계에서 사라져 버린 지금, 그 고통은 더 집요하고 치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나의 고통의 끝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신은 참으로 잔인하다. 인간에게 선이나 악, 둘 중 하나만을 주지는 않는다. 선악을 두루 지니게 만드셨다. 항상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동전의 양면처럼, 필요할 때 둘 중 아무거나 꺼내 던질 수 있게 한다. 조금이라도 빈 틈을 보이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이면에 숨겨두었던 악의 본모습이 맹렬히 달려든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선한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삼켜버린다. 악의 속성을 더 강하게 지닌 그녀들의 선택이 불가항력적이었다면 보다 선한 마음을 지닌 우리네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 냉혹한 결과는 너무도 당연히 선하기만 해서 바보 같은, 우리가 뼈아프게 감내할 수밖에 없다. 깊숙한 안주머니 동전의 양면을 잘못 선택한, 그녀들의 흠결을 바보 같은 선함을 지닌 책임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삶이란 게 그렇지 어디 뜻대로 되는 적이 있기나 한 것일까.
결국 그녀의 죽음이 어이없다는 이유로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연민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인생이란 게 그렇다. 결국엔 희극으로 마무리가 될지언정 그것 또한 무수한 비극을 켜켜이 내포하는 계단을 쌓고 쌓아야 가능한 것이다. 죽음이 삶의 결실이라면,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녀를 평생 증오했던 나는, 이제 이 모든 고통을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녀를 용서하기에는 아직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증오라는 이름의 긴 터널에 갇힌 시간의 째깍거림을 멈추어야겠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녀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더 이상 증오가 아닌, 또 다른 나만의 의미인 연민으로 그녀를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