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덕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어느 순간, 바람의 모습이 미세하게 바뀌어 있었다.

by 윤수현

기차역은 철골만 완성된 건물처럼, 거센 바람에 무방비 상태로 그렇게 던져져 있었다.

멈추어선 에스컬레이터 위에도 매서운 바람이 머물고 있었고, 인적 없는 계단 위에도 휘몰아치고 있었다. 결코, 균일하다고 볼 수 없는 바람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균일한 바람을 찾아 낯선 어둠 속을 뚫어지게 노려보았지만, 아쉽게도 원하는 순간에 만족할만한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었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역사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온 거리에도 독기를 품은 검은 바람은 휘몰아쳤다. 허여멀건 불빛의 침침한 가로등이 역사 쪽 건널목에 서 있었는데, 그쪽에도 독기를 품은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왜 독기를 품었다고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그 시점의 검은 바람은 손톱만큼의 다정함이나 애정이라고는 없는, 냉소적인 독기만 가득하다고 느꼈다. 다분히 그랬다. 지퍼가 열려있는 오리털 파카 주머니에도 매섭고 차디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본 적은 없지만, 시베리아 벌판의 눈보라가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보라만 빼면 똑같을 것 같았다. 그 계절에 흔히 부는 12월의 바람은 아니었다. 내가 여태껏 느껴 보았던 12월의 바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바람은 아주 천연덕스럽고 태연스럽게, 변함없이 이곳에 있었노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방인에게.


역과 아파트 사이에 둥그렇게 움푹 들어간 알 수 없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둥그런 공간에도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름에는 아이들 워터파크로 운영 중인 공원이었다. 어찌 됐든 지금은 텅 빈 채, 어렴풋이 드러나 있는 을씨년스러운 그 위로도 쓸쓸하기만 한 매서운 바람은 휭휭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주선이 머물다 떠난 형상을 한 채 날카로운 바람을 가득 움켜쥐고 있는 구덩이 안 쪽에, 마른 잎 몇 개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둥둥 떠서, 빙글빙글 정신없이 한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정면으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아파트단지의 낯선 바람은,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을 품은 채로 내게 가차 없이 휘몰아쳤다. 1층과 화단사이 빈 공간 아래쪽으로 흉물스럽게 메말라버린 나지막한 조경나무들과, 정리되지 않고 방치된 채 널려있는 빈 화분과 작업도구들이, 생기라고는 없는 겨울의 메마른 대지와 얽혀, 왠지 구토가 나올 것 만 같은 쓸쓸한 풍경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메마른 어둠 사이로 삭막한 풍경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흰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을 피해 더 깊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구석으로 사라졌다. 까만 어둠의 색깔과 대비된 고양이는 그 하얀 색깔이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고양이가 사라진 구석진 어둠 한편으로, 동그란 플라스틱 그릇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비어 있는 그릇들을 힐끗 쳐다보고 1층 현관문에서 동호수를 누르고, 임시로 받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올 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인기척은 매섭고 차가운 바람에 질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해 겨울의 바람은 너무도 매섭고 낯설고, 차가웠다.

나는 그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건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기억이었고, 어떡하든 이곳에 적응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담한 기억이었다.


남편이 사업차 오가는 양평과 청담동 중간쯤에 위치한 이곳으로 방향을 정했을 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득함을 느꼈었다. 어쩌다 예기치 못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면, 잠시 머물다 떠날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야말로 대단히 조용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었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둠이 걷힌 아침 햇살의 거리는 약간은 어수선했다. 쭈뼛거리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거센 바람은 어둠이 사라진 아침의 거리에도 여지없이 쌩쌩거리며 몰아쳤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주 작고 누추한 점포들이 반쪽뿐인 인도를 끼고, 꼬불꼬불한 이차선 도로 양옆에 복잡하고 정신없는 골목길과 함께 늘어서 있었다. 일명 번화가인 곳은 신호등도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눈치제로게임 광장이었다. 완공이 일 년도 넘게 남은 아파트 공사로 주변은 너저분하고 혼잡스러웠고, 몹시 불안정하고 위험해 보이는 그 주변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가고 있었다.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젊고 생활력 있는 사람들은 하남이나 별내 신도시로 떠나버리고, 노후에 한강변을 찾아든 노인네들이나, 생기를 잃어가는 늙은이들만 가득한 이곳은 도시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시골도 아닌, 어정쩡한 곳이었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너무 작고 정체된 곳이었다.


한강 쪽에서 거무칙칙한 바람이 불어와 무작정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내내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어딘가 바람이 반쯤 빠져버린 풍선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없이 매섭고, 황량하고 거칠기만 했다. 거센 바람은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날려버릴 기세로 내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살아 있는 온몸의 모든 신경을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다.


작은 삼거리에서 잠깐 멈추어 서서, 맨 홀 뚜껑에 끼여서 파들파들 떨고 있는 마른 잎을 바라보며, 어느 쪽으로 갈까. 생각을 해보았다. 역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으로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에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챙겼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모퉁이까지 걸어갔다. 차도가 나왔다. 자동차는 많지 않았고, 인적도 드물었다. 간혹 목줄을 손에 쥐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노인네들이 눈에 띄었다.


건널목을 건넜다. 인도에 올라서기까지 극히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한강에 너무 놀라서 산책길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아침 햇살에 한강은 수면 위에 반짝반짝 금모래를 흩뿌려 놓고 있었다.


덕소 강변대교 밑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왼쪽으로 아님, 오른쪽으로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느긋하게 걷거나, 조급하게 달려서 지나가고 있었다.


일단, 넓게 경사진 화단 아래로 구불구불 나있는 좁은 흙길이 재미있어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자전거 옆 나무벤치에 할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고, 운동기구에 진심인 무리가 매달려 있는 광장을 지나, 한강이 시원하게 보일 듯싶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상대로 한강은 그곳에 있었다. 아무런 편견도,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그곳에 그냥 멈추어 선 듯, 흘러가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옆으로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나란히 길고 널찍하게 똑바로 뻗어있었다. 그곳에도 거센 바람은 당장이라도 날려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한강 반대편 주변은 한 때는 풍요로운 초록빛 너른 들판이었을, 잘 가꾸어진 누런 잔디밭과 텅 빈 광장이었고, 아직은 땅 속에 잠들어 있을 꽃 향기와 촉촉한 흙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인상착의를 굳이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대체적으로 여자들은 얼굴에 뭘 잔뜩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 점은 편했다. 태양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왜 대놓고 태양 앞에 나와 달리거나 걷기를 하는지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거리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는 형국이었다.


여자 왼쪽 발목에 하얗고 작은 비숑의 목줄을 매달고, 조깅을 하는 커플이 옆을 스쳐 앞으로 나아갔다. 비숑은 죽어라 그들을 따라 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학대를 당한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차양모자에 두건을 얼굴과 목 전체에 뒤집어쓴 채, 그 위에 선글라스까지 걸친 여자들은 낯설지 않게 계속해서 내 곁을 스치며 지나쳐갔다. 자전거도로에도 끊임없이 선수용 자전거들이 일렬로 혹은 혼자서 왼쪽으로 달리고 오른쪽으로 달렸다.

나무벤치 다리에 목줄을 묶어 놓고, 에어로빅하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백구가 졸고 있다.


강을 마주하고 드문드문 있는 나무벤치에 중년의 남자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강물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나도 얼마 간 떨어져 있는 벤치에 앉아 막 거기에 앉아 강을 보며 생각에 잠긴 것처럼 최대한 태연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사잇길로 나를 향해 다가오다가 그대로 지나쳐 사라질 때까지, 느낌으로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알아챘지만, 나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딴 곳만 쳐다보았다. 말끔한 차림새의 세련된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지나쳤다. 강 건너 대각선 왼쪽 끝자락에 스타필드가 보였다.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벤치 아래로 깊게 경사진 화단 아래, 강 가까이에 시멘트로 산책길처럼 보이는 또 다른 길이 있었는데, 그 길과 화단아래 풀 숲 사이에서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에 흰 점박이 무늬가 왼쪽 얼굴에서 가슴께로 다시 등 쪽으로 올라오는 카리스마 넘치는 검은 고양이가, 길고 윤기 나는 꼬리를 한 번 휘 내둘리더니, 거들먹거리며 다리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로 북극곰을 닮은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우아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흰고양이의 꽁무니를 쫓다가 이윽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좁은 도로는 화창하고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윤곽조차 뚜렷하지 않은 구름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윤곽조차 뚜렷하지 않은 거센 바람들, 윤곽조차 뚜렷하지 않은 많은 기억들.


태양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느낌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세하게 흐르는 시간에도 전혀 동조하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내리쬐고 있는 그 시간의 태양은 거세고 차가운 바람과는 별개로 또 다른 세계였다. 그 이질감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태양이 작렬하는 수면 위를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물 위에서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놀던 오리가 어느 순간,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반사되어 나를 내리쬐는 태양 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내 눈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계속 내 눈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조금은 기분이 좋아져서 더 걸어보기로 했다. 조금은 으스대는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 분에서 십 분쯤 걸으니 오른쪽 숲이 우거진 쪽에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여린 빛이 내게로 왔다.

자작나무 숲길이 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가 울타리를 이룬 오솔길이 굽이져서 오밀조밀 나있었다. 아직은 거대한 군집을 이루진 않았지만, 오밀조밀하게 매력적이면서도 뭔가 절묘한 자작나무 숲길은 나의 영혼을 간질거리게 했다. 울창하지는 않았지만, 사이사이 햇살을 머금은 담백하면서도 가녀린 멋이 있었다. 수줍다고 표현하고 싶은, 아직은 소녀 같은 폭신폭신 오솔길은, 이방인에 더더욱 가차 없었던 매섭고 차가운 바람조차도 잊게 만들었다. 자작나무 여린 잎사귀에 앉아 빛나고 있는 햇살도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햇살은 자작나무 여린 잎사귀에 쌓여 있던 흙먼지까지 모조리 핥아서, 자작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한쪽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나무벤치로 옮겨갔다.


모든 것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한참을 햇살과 함께 나무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입구에도 아무도 없었다. 강바람만이 광장 한복판에서 휭휭 거리며 둥글게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딱히, 급하게 할 일도 없어서 자작나무와 오솔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광장에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음악소리가 들렸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단상에 올라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 강사를 따라 무리의 사람들도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모험이 시작될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나는 흥분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딱히 들어줄 만한 상대도 없었다.


뼛속까지 스미는 매서운 바람도 뺨을 간질이는 봄바람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자작나무숲의 오솔길 맞은편에서 마주 보며 걸어오는 온화한 표정의 커플에게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날 선 눈빛으로 지나쳤던 모든 이들이 깨끗하고 정직하고 순박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아직 그들을 받아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내가 그들을 받아주기에는 그해 겨울의 바람은 너무도 매섭고 차가웠다. 여전히 바람은 매서웠지만, 이제 나는 그들을 받아 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편견도 선입견도 없이, 무심한 척 묵묵히 기다려준 한강처럼 나도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줄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모험의 세계를 만날 생각에 최대한 화사한 옷으로 차려입고, 장미색 립스틱 위에 반짝이는 디올 립글로스를 덧바르고 현관문을 나섰다. 거리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지만 어느 순간, 바람의 모습이 미세하게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