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그 가벼움에 대하여

산다는 건,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잘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by 윤수현


덕수궁 앞은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찾은 덕수궁은 아직 단풍이 이르다. 간간이 설익은 냄새를 풍기는 은행나무는 그 새 그늘이 더 풍성해진 듯하고,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간다는 주목(朱木)은 속살을 드러낸 채 더욱 단단해 보인다. 그들의 한 없이 순진해 보이는 작은 열매는 햄릿이 숙부를 독살하는 독으로 사용했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한동안 한가로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다. 벤치에 앉아, 싸 온 간식을 조심스레 꺼내먹는 중년의 부부 발치께로 참새들이 모여든다. 덕수궁의 참새들은 작고 귀엽다. 단장을 한 듯 털도 고르고 윤기마저 흐른다. 한가롭다. 움직이는, 그렇지 않은 것들마저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에서는 적멸의 화가 정영렬의 기증작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적멸은 죽음, 열반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지만, 사상의 한정된 의미를 넘어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확장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밀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원형 혹은 사각의 형상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이어지는 이미지들은, 수많은 우리네 존재들의 잔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미세한 떨림과 파장은 고도로 세련되고 절제된 무언가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광장 잔디밭 끝자락을 따라 유선형의 아름다운 몽골 천막들이 하얗게 늘어서 있다. 축제다.

축제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마주 보이는 광장의 북편은 인적이 드물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는 한산하다. 분향소 주변에는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적어 매단 수천 개의 노란 리본들이 막대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청 건물 복판 대형 간판에 적혀있는

마지막 한 분 까지, 세월호 희생자가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란 문구가 낯설게만 다가온다.


화면으로 볼 땐, 완전한 동그라미로 파랗게만 보였던 광장은 군데군데 무수한 발길들로 인해, 흙이 드러나 있었다. 파인 웅덩이 숫자만큼 사연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광장을 지나 무교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벼운 근심은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오늘 나도 모르게 말도 많고 생각도 많았다.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뒤로, 상처받은 누군가의 아픔들을 접했을 때의 먹먹한 곤혹스러움과, 모든 사람들이 정의롭다고 칭송했던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내리던 이의 추악하고 쓰레기 같은 이면을 보았을 때의 당혹감, 그 위로 노란 리본의 물결이 자꾸만 휘감겨서 말은 많아지고 있었고, 소주잔은 자꾸만 비워져 가고 있었다.


'행복한 하루' 단지, 이름이 마음에 들어 들어앉은 식당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그들은 행복할까.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온 음식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간간이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지인은 항상 잔을 꽉 채우지 않고 따라 주신다. 여백의 미를 음미해 보라는 뜻일 게다. 그러고 보면 소주병의 소주도 항상 누군가 채워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조금은 비어 있다.

산다는 건,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잘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 괴테의 말처럼 존재의 미약함을, 그 존재의 가벼움을 지금 이 순간처럼 이렇게 채워가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래, 소주 한 잔이면 족하다.


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길 건너 끝 자락에 있을 광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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