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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엄마를 위한 토마토 파스타

퇴사 후 시작된 나의 요리 시간

by 시도



퇴사 후 본가로 돌아와 지내기 시작한 2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집 냉장고 속 재료들로 요리를 했다. 자취생이었을 때도 요리를 곧잘 해먹었지만, 혼자 살 때의 내 냉장고와는 차원이 다른 본가 냉장고 속 재료 목록 덕분에 매일이 즐거웠다. (지금은 다시 본가에서 나와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냉털'을 즐긴다.) 손에 잡히는 재료들을 다듬고, 익숙한 레시피를 내 방식대로 변주하는 이 시간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나를 돌보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어떤 날은 바쁜 하루 끝에, 어떤 날은 조금 느긋한 오후에. 직접 만든 음식을 한입 맛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나는 다양한 재료와 양념을 아낌없이 넣어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편이었다. 특히 한식 중에서는 매콤한 음식을 즐겼기에, 열심히 만든 음식을 엄마께 권해도, 비교적 슴슴한 한식을 좋아하는 엄마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과 나는 모두 입맛이 달라, 가끔씩 각자 원하는 음식을 따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남이 해준 요리가 가장 맛있다’고 하시는 엄마께,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한 입 맛보고 “맛있다”라고 해주실 만한 음식을.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새콤한 토마토 소스를 듬뿍 넣은 토마토 파스타가 먹고 싶었다. 시판 소스에도 양파나 토마토, 올리브 등의 재료가 조금씩 들어있긴 했지만, 내 입맛에는 재료가 풍부할수록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냉장고에서 양파, 버섯, 햄을 찾아 꺼내서 잘게 다졌다. 나는 토마토 소스를 사용할 때도 생토마토를 추가로 넣는 걸 좋아한다. 식감이 훨씬 풍부해지고, 맛도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어떻게 썰까 고민하다가, 반달 썰기로 식감을 살릴지 다져서 소스에 녹아들게 할지 한참 망설였다. 결국 적당한 크기로 깍둑썰기해 준비했다.


프라이팬을 꺼내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다진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어 볶기 시작했다. 양파와 토마토에서 나온 채수가 천천히 어우러지며 적당한 농도로 익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뭉근하게 익어가던 재료들이 하나의 소스로 완성되어 갈 때, 부드러운 향과 따뜻한 기분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내가 토마토와 채소들을 볶고 있으니, 엄마가 어느새 내 뒤에 서 계셨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던 엄마는 물으셨다.

"시판 소스에 토마토를 좀 더 다져서 넣는 거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생토마토를 추가하면 더 맛있어. 어울리는 재료들이기만 하면 넣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것 같아."

그러면서 슬쩍 여쭤봤다.

"엄마도 파스타 같이 드실래요?"

재료가 듬뿍 들어가 되직하게 끓여지고 있는 소스의 풍미가 궁금하셨는지, 흔쾌히 대답하셨다.

"그럴까?"

엄마는 내 요리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소스는 약불로 살짝 졸이며 깊은 맛을 더했고, 한쪽에서는 파스타 면을 삶았다. 나는 적당히 꼬들한 식감을 좋아하지만, 엄마는 조금 더 부드러운 면을 선호하셔서 시간을 조금 더 두고 삶았다. 같은 파스타 한 접시에도 각자의 취향이 담긴다는 게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다.



물기를 뺀 파스타 면을 소스에 넣고 중불에서 살짝 볶아 수분을 날렸다. 면과 소스가 적당히 어우러질 때까지 조심스럽게 저으며, 마지막까지 맛이 잘 배도록 신경 썼다.

완성된 파스타를 흰색 접시에 정성스레 담아 엄마 앞에 내밀었다. 혼자 먹을 땐 대충 그릇에 퍼 담곤 했지만, 이 날만큼은 예쁘게 플레이팅하고 싶었다. 엄마를 위한 요리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남은 파스타를 슥슥 담아 들고 엄마 맞은편에 앉았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파스타를 앞에 두고, 엄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한 입 드시자마자 입맛에 맞으셨는지 맛있게 드셨다. 평소에 파스타 해 드실 땐 파스타면 양 조절이 어려웠다며, 나는 어떻게 딱 맞게 만드느냐고 신기해하셨다. 토마토를 다져 넣은 소스도 마음에 드셨는지 맛있게 드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이상해졌다.








"엄마는 파스타에 어떤 재료 넣는 게 좋아? 내가 다음에 또 해줄게."

나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시던 엄마는 꽤 구체적으로 대답하셨다.

"나는 피자치즈 듬뿍 뿌려서 먹는 게 맛있더라. 치즈오븐 스파게티."

그 순간, 몇 년 전 사두고 거의 쓰지 않았던 미니 오븐이 떠올랐다.

"엄마, 그럼 내가 다음엔 치즈오븐스파게티 해줄게. 그 때 또 같이 먹자."

치즈 폭탄 이불을 덮은 파스타를 상상하며, 우리는 다음 ‘파스타 모임’을 약속했다.









그 후,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위해 파스타를 요리했다. 치즈를 듬뿍 올린 치즈오븐스파게티, 베이컨을 넣어 감칠맛을 더한 베이컨 토마토 스파게티, 다진 고기를 가득 넣은 미트 토마토 스파게티까지.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된 후에도, 나는 종종 엄마를 집으로 초대해 정성스레 요리를 차렸다. 남이 해준 요리가 가장 맛있다고 하시던 엄마를 위해, 그날만큼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재료를 준비하고, 스프나 닭날개튀김을 곁들이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게는 언제나 효율이 먼저였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것이 최고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이와는 반대로, 굳이 더하지 않아도 될 정성을 좀 더 들이며 요리하는 순간은 참 여유롭게 느껴진다. 천천히 다져 넣은 토마토, 부드럽게 졸아든 소스, 그리고 엄마와 마주 앉아 나눈 파스타 한 그릇. 그렇게 만들어진 한 접시의 파스타를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마음을 챙긴다는 건 때로는 조금 더디더라도 기꺼이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그 이후로도 엄마와 함께 했던 '토마토 파스타 모임'.

되돌아보면 그건 엄마를 위한 요리였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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