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량이 필요하다? 그럼 노릇하고 바삭한 감자전이지

그저 기다리는 시간도 좋아

by 시도





열량이 필요한 날, 감자전은 나에게 특효약이다.


왕복 4시간 거리의 강의를 다녀오는 날이면, 아침과 점심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장이 예민한 편이라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밖에서 식사하는 걸 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간단하게나마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금 내게 필요한 열량을 채워줄 음식이다. 김밥? 라면? 하나씩 떠올려 보지만, 결국 ‘감자전’이라는 답에 도달하곤 한다.



KakaoTalk_20250216_212803080 copy 2.jpg


감자전은 참 신기하다. 재료라고 해봐야 감자와 부침가루, 물이 전부인데도 완벽한 맛이 난다. 상상만으로도 배가 고파지는 이 마성의 음식은,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손을 찬장으로 이끈다.


평소엔 잘 입지 않는 셔츠와 슬랙스를 벗어 던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이미 여러 번 해본 강의지만, 할 때마다 처음 같은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집에 오면 늘 너무 허기진다.


일단 베란다에서 동글동글 모양 예쁜 감자들을 2개 정도 가져온다. 양파도 살짝 넣고 싶어져서 양파도 함께 꺼낸다. 집 냉장고에 애호박이 있을 땐 애호박도 넣는 편이다. 감자칼로 껍질을 슥슥 벗긴 뒤, 소금을 살짝 뿌려 물기를 빼준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그 기다림만큼 맛도 깊어진다. 물기를 뺀 감자와 양파는 길고 얇게 채 썬다. 나는 감자를 갈지 않는다. 감자를 갈면 쫀득한 감자전이 되고, 채를 썰면 감자의 식감이 살아 있는 감자전이 된다. 나는 후자가 더 좋다.


감자와 양파를 다지는 것이 끝났다면 재료 준비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적당히 큰 그릇에 감자와 양파를 넣고, 부침가루를 보통 네 스푼 정도 넣으면 딱 내가 좋아하는 식감이 난다. 반죽이 너무 묽어지면 바삭한 식감이 살지 않으니 신중하게 조절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감자전 반죽 준비는 끝이다.






KakaoTalk_20250216_212803080.jpg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리고 기름을 두른다. 기름을 두르고 바로 반죽을 붓지 않고, 기름이 톡 튀는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 기다리는 시간들이 모두 모여 감자전의 맛을 만든다. 실제로도 바삭하고 맛있게 구워짐은 물론이고, 기다림을 통해 심리적으로도 한층 더 맛있게 느껴진다. 가장자리가 먼저 바삭하게 익고, 점점 중앙부까지 익는다. 반죽의 물기가 많이 사라지고 윗면이 거의 익어갈 때쯤, 뒤집개로 깔끔하게 뒤집는다.


뒤집은 후에는 다시 뒤적거리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다. 노릇한 빛깔을 띄며 보기좋게 익어가는 감자전을 기다리며, 함께 곁들일 간장을 만든다. 간장 두 스푼, 식초 두 스푼, 설탕 한 스푼을 넣고 잘 섞는. 농도가 진하면 물도 한 스푼 넣는다. 여기에 다진 양파를 넣으면 더 맛있고,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으면 매콤한 풍미가 더해진다.


이렇게 양념 간장까지 만들고 나면 감자전은 얼추 다 익어 있었다. 숟가락으로 감자 부분을 살짝 눌러봤을 때 부드럽게 감자가 잘리면 완벽한 타이밍이다. 이제 넓은 접시에 담아 따끈한 감자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익숙한 영화를 틀어 놓고 감자전을 맛보고 있노라면, 오늘 내가 강의한 내용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가면서 갑작스러운 회고 시간이 시작되곤 했다. 내 말투는 어땠는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적절했는지, 전달한 내용 중 틀린 부분은 없었는지 곱씹어 본다. 이미 집에 오는 길에 메모장에 정리해 두었지만, 혹시 빼놓은 게 있을까 싶어 한 번 더 돌아본다. 바삭하고 뜨거운 감자전으로 기운을 채우자, 아까 생각나지 않던 것들도 하나둘 떠오른다. 잊기 전에 메모장에 추가하고, 다시 감자전을 한입.


KakaoTalk_20250216_212929638_1.jpg






문득 궁금해졌다. 왜 나는 밖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온 날이면 감자전이 생각나는 걸까?

감자전은 준비한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린 후, 그저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평소와는 달리, 밖에서 '열일'하고 돌아온 날은 그 기다리는 시간이 묘하게 힐링으로 다가온다. 불 앞을 떠나지 않고 그저 익어가는 감자전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 어쩌면 감자전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그 기다리는 시간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제 곧 2월 강의 날이 다가온다.

집에 감자가 똑 떨어졌으니 미리 사둬야겠다.

이번엔 애호박도 듬뿍 넣어서, 좀 더 천천히 익어가는 감자전을 만들어야지.







keyword
이전 01화한 달에 한 번, 엄마를 위한 토마토 파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