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들이 결국 내게 위로가 된다
가끔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많이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언가 새로운 존재를 찾아 헤매기보단 내게 가장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까지 전부 내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우선으로 둔다.
이럴 땐 새로운 최고급 요리를 찾게 되는 대신, 본가에서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진다.
<나를 챙기는 마음 레시피> 1편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엄마와 나는 입맛이 아주 다르다.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은 맵고 간간하고, 단짠의 조화가 강하게 느껴진다. (=내 입맛에 딱 맞고 맛있다.) 그렇다면 슴슴한 음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은? 당연히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간이 삼삼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해도 가장 내게 '익숙한' 맛은 본가에서 엄마가 해주신 김치볶음밥 쪽이다. 이걸 먹으며 엄마의 크고작은 잔소리를 듣는 시간은, 아무 걱정 없던 어린 날 어느 순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엄마의 김치볶음밥은 조리 과정부터 다르다. 우선 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을 두른 다음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은근한 불에서 천천히 볶아 김치 자체의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나는 여기에 고춧가루와 굴소스, 설탕을 더해 맛을 낸다면, 엄마는 그런 양념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양파와 버섯을 잘게 썰어 김치와 함께 볶아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하신다. 밥을 넣을 차례가 되면, 나는 빠르게 센 불에 볶아 바삭한 식감을 살리려고 하지만, 엄마는 중약불에서 오래 볶아 수분을 천천히 날려가며 차분한 맛을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캔참치를 넣어주실 땐 김치와 참치가 특히 잘 섞이도록 볶아주신다.
학생이었을 땐 좀 더 간간한 김치볶음밥을 원하기도 했다. 좀 짜게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 본가에 와도 김치볶음밥의 간은 항상 슴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늘 간간하게 먹는 나에게 본가에서만이라도 슴슴한 음식을 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은 힘들 때 화려하고 값비싼 음식으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익숙한 맛이었다.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그 맛을 음미하는 순간,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된다. 어릴 적 주방에서 들리던 도마 소리, 식탁에 앉아 기다리던 내 모습, 엄마의 잔소리까지 모든 것이 함께 떠오른다. 그 모든 순간이 어우러질 때 내 마음은 편안해진다.
하지만 진짜 '아는 맛'이 완성되려면, 그 밥상에는 음식만 있어서는 안 된다. 수십 번은 봤던 영화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수백 번은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곁들여져야 한다. 다리 꼬고 앉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김치볶음밥에 들어가는 조미료처럼 맛을 더한다. 즉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까지 모두 내게 익숙한 것이어야 한다.
본가에서 먹는 김치볶음밥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익숙한 재료로 만들어진 편안한 한 끼이자, 늘 곁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주는 음식이다. 오늘도 나는 한 숟갈을 뜨며 생각한다. "그래, 익숙한 게 가장 든든한 법이지." 그렇게, 엄마의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다시 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