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하고 간단한 밥반찬, 달걀 장조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냉장고가 정말 텅 비는 날이 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지만 가끔 일정에 치여 그걸 깜빡하고 나면 어느새 반찬 하나 없이 허전해진 냉장고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냉장고에 다른 건 다 떨어져도 계란만큼은 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계란마저 없는 날은 정말 큰일인데, 계란은 언제나 나의 마지막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
계란 프라이야 워낙 자주 해 먹지만, 가끔은 조금만 더 정성스러운 계란 요리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찾는 메뉴는 바로 달걀 장조림.
냉장고가 아무리 비어 있어도 달걀, 간장, 설탕 이 세 가지만 있다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아주 맛있다.
먼저 달걀 5~6알을 준비해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보통 8분 정도 삶으면 노른자가 부드럽게 익고 껍질도 잘 벗겨진다. 너무 짧게 삶으면 껍질 벗기다 달걀이 다 부서지니 주의.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주방에 머무는 그 시간도 꽤 따뜻하다. 삶은 달걀은 바로 찬물에 담가 식힌 뒤 껍질을 벗긴다. 이제 껍질을 벗긴 달걀들을 간장 베이스에 넣고 끓여주면 되는데, 바로 먹지 않을 거라면 그대로 담가 12시간 정도 두는 것도 괜찮다. 이런 숙성형 장조림은 깊은 맛이 매력이다.
간장과 물은 2:1 비율, 종이컵 기준으로 간장 1컵이면 물은 반 컵 정도면 된다. 설탕은 1/4컵부터 시작해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좋다. 처음부터 단맛을 세게 넣으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씩 간을 보며 추가하는 게 안전하다.
중약불에서 조심스럽게 달걀을 굴려가며 5분 정도 졸여주면 달걀 겉면에 짭조름은 간장 코팅이 입혀진다. 너무 오래 끓이면 간장이 졸아들어 짜질 수 있으니 적당한 타이밍에 불을 끄고, 따뜻한 때 두 알 정도만 꺼내 밥 위에 얹어준다.
여기서부터는 선택 사항이지만, 나는 보통 김가루를 준비해 밥 위에 뿌리고 참기름을 살짝 더한다. 그 위에 달걀을 으깨 먹으면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다. 달걀 장조림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지만 그 위에 김가루와 참기름을 더한 건 왠지 조금 더 나를 아껴주는 한 끼처럼 느껴진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텅 빈 냉장고 앞에서 배달 앱을 켜야 하나 고민하던 내가, 이제는 따뜻한 밥과 달걀 장조림을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다니. 역시 계란은 냉장고 속 수호자가 맞다. 아무 것도 없을 때, 마지막에 날 구해주는 든든한 친구.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맛있는
달걀 장조림의 좋은 점은, 다음 날에도 여전히 똑같이 맛있다는 것이다.
다른 반찬과도 잘 어울려서, 따뜻한 밥만 준비되어 있다면 다시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여기에 꽈리고추나 소고기, 양파 등 다른 재료를 넣으면 감칠맛이 더욱 풍부해지는데,꼭 넣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달걀은 그 자체로 너무 맛있는 식재료니까.
언제 먹어도, 어느 순간에 꺼내도 늘 든든하고 다정한 그 맛.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