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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좋은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나의 또다른 오이 샌드위치를 기다리며

by 시도



내 주변엔 유독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 그리고 좋아하는 색이 확실한 사람에게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며 즐거움을 느끼거나, 페스티벌을 한껏 즐기는 것처럼, 어떤 것을 깊이 좋아하는 그 마음이 부럽다.


그런데 나는, 특별히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없다.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해본 적도 없고, 자주 찾는 와인 바도 없으며, 나만의 패션 스타일도 없다. 심지어는 특별하게 즐기는 레시피도 없다. 그래서 가끔 나 스스로를 라보면 '무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접어들던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해야 하는 일이나 성장을 위한 자기계발 말고, 내가 즐길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도 사실은 재능이라는 것을. 무엇인가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다른 것들도 쉽게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순간에도 즉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티켓을 지닌 사람들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이라도 좋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생기면, 그것을 파고들어 보기 시작했다. 그게 왜 좋은지도 생각하고,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기분 좋아지는지도 따져본다. 마치 '좋아하는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매일의 작은 루틴처럼, 그 순간을 생략하지 않고 온전히 즐기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내가 행복을 느꼈던 순간은 오이 샌드위치를 먹을 때였다. 이걸 먹을 때마다 단순히 맛있어서 입이 즐거운 걸 넘어, 복합적인 행복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 레시피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고민해 봤다.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고 가벼워서? 내가 좋아하는 오이가 들어가서? 같이 넣는 그릭요거트가 맛있어서?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면서도 이걸 계속 즐겼다. 이 레시피가 너무 좋아서 내 SNS에 올려서 다른 이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그냥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즐거움을 다른 이들도 함께 느끼길 바라며.


그러던 어느 날, 또 오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문득 깨달았다. 뭔가를 좋아하고 즐기는 데는 특별한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구나. 그냥 마음이 가고 손이 가는데, 거기서 구태여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보니, 지금껏 내가 쉽사리 어떤 걸 깊이 좋아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건 어떤 감각에서 오는 감정인데, 나는 어느새부턴가 많은 것들을 나노 단위로 쪼개서 이유를 찾고 의미를 찾는 게 너무나도 습관이 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마음이 가는 존재에는 이유와 의미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이런 작은 변화가 내게 의미가 있다는 걸 느끼며, 최근엔 그릇이나 맛있는 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저 소소한 관심이지만, 이 변화가 점점 나를 더 뿌듯하게 만든다.


일과 공부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나'라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나'의 감각과 감정에 좀 더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며 20대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다가올 30대를 맞이하고 싶어졌다.


곧 다시 찾아올 나의 또다른 '오이 샌드위치'를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며, 오늘도 새로운 행복 하나를 찾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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