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닭볶음탕으로 행복해지는 법
스무 살 이후 자취를 시작하면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밀키트로 끼니를 해결한 적도 많았다.
특히 취업과 졸업 준비를 함께하던 시기, 그리고 첫 직장에서 정신없이 적응하던 기간엔 더더욱 그랬다.
(배달앱 등급이 꽤 높았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엔 정성껏 차린 한 끼를 스스로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한 음식을 먹는 것이 내게 가장 따뜻한 돌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지 못할 이유는 항상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핑계에 가까웠다.) 야근이 잦아서, 너무 피곤해서, 장 볼 타이밍을 놓쳐서.. 이런 이유들로 한동안 요리를 멀리했다.
그러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요리를 못 할 이유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시간과 여유가 좀 더 생겼고, 집 근처엔 대형 마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계란말이나 김치찌개 같은 익숙한 한식부터 파스타나 또띠아 같은 간단한 양식까지. 레시피는 넘쳐났고, 자취로 쌓은 요리 능력치도 어느 정도 있었기에 다시 요리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며칠 전 내 자신이 유난히 못나 보였던 날이 있었다.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이유 없이 위축되는 내 모습이 낯설고 마음 아팠다. 늘 끼니는 제대로 챙겨먹었는데, 그날은 먹는 것에 에너지 소모를 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 하며 냉장고를 열었는데 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늘 구비해두던 계란조차도.
몰려오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배달 앱을 켜다가, 문득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해 줬던 요리가 떠올랐다. 바로 닭볶음탕이었다. 재료는 여러 가지가 들어가지만 조리법은 단순해서, 누군가에게 해 주기 좋은 요리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요리를 나에게 해준 적은 없었다. 늘 30분 안에 요리를 끝마치던 루틴 속에서, 닭볶음탕은 선택지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 풀죽은 나 스스로에게 닭볶음탕을 해주기로 했다. 먹고 나면 내 마음도 좀 괜찮아질 거라 기대하며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했다.
닭은 핏물을 빼고 물에 넣어 중불로 먼저 끓이기 시작했다. 후추를 살짝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자와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고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 매콤함도 추가했다. 고춧가루와 간장,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 후 좀 더 끓여주면 완성. 완성된 닭볶음탕의 불을 잠깐 껐다가, 10분 후 다시 좀 더 끓여주면 국물이 더 깊어진다.
완성된 닭볶음탕을 보니, 나 자신에게 꽤 정성을 다한 기분이 들었다. 밥도 아무 그릇에나 담아 대충 먹었었는데, 그날은 얼마 전 새로 산 그릇에 조심히 담았다. 이렇게 한 상을 차리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닭볶음탕을 한 입 맛보니, 오늘 배달 대신 요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챙기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끼로도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서툴지만 진심어린 정성. 돌봄이라는 건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제때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 아닐까?
요리가 내게 위로가 되었던 이유도, 아마 그와 비슷해서였을 것이다. 필요한 타이밍에 맞는 재료를 넣어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 자신을 챙기는 일과 닮아 있어서.
평범한 한 끼들이 모여 내 삶을 데우고, 달랜다. 내일도 나는 다른 냄비의 뚜껑을 열 것이다. 냉장고 속 재료들과 손끝의 온기, 그리고 나를 챙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또다른 마음 레시피를 만들어가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오늘도 나를 잘 챙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