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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식탁에만 오르면 된다

완벽보다는 완성으로 가는 길

by 시도




퇴사 후 회사 밖에서 일하면서 좀 더 꼼꼼해졌다.

이제는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져서일까?

실수가 나오면 너무 괴로웠고, 같은 걸 몇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원인을 끊임없이 찾았고, 내가 부족한 건 아닌가 자꾸 의심했다.


한마디로 나는, 완벽해지고 싶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두고 나 자신을 매일 다그치고 있었다.

일은 끝나지 않고, 마음은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맛있는 걸 대충 해서 넷플릭스를 틀어놓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속 식재료로 후다닥 맛있는 걸 만들고, 식탁에 앉아 한 입 먹는 그 순간 - '완벽'이라는 개념은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미료를 흘리든 간이 좀 모자라든 상관없었다.

내가 먹을 음식이니 모양도 중요하지 않고, 조미료를 넣을 때도 눈대중이면 충분하다.

간이 조금 모자라면 나중에 더하면 되고, 식감이 좀 아쉬워도 다음에 개선하면 된다.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요리는, 딱 내 입맛에 맞는 걸로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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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오른 수많은 나만의 한 끼들.

대단한 레시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냉장고에 있는 걸 있는 대로, 지금 가능한 만큼만 꺼내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실패한 기억이 거의없다. 왜냐하면 요리할 때는 '완벽'이 아닌 '완성'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귀찮을 때도 있고 뭔가 부족한 날도 있다. 그러나 그 감정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내겐 요리 시간이었다. 요리하는 동안에 단순해지는 마음 그 자체를 좋아한다. 대충의 재료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서툰 손끝으로도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시작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어렵게 시작해놓고도, 끝내기가 두려워진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시작했고, 그걸 끝까지 마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완벽이 아닌 완성으로 나아간다는 건 스스로에게 조금은 다정해지는 길인지도 모른다.


모로 가도 식탁에만 오르면 되는 요리처럼,

내 삶도 정성껏 완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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