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영하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꾸준히 작성해오던 블로그를 보시고,
한 기관의 교육 관련 부서 담당자분께서 강의 제안을 주셨다.
이미 강의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보람과 매력을 느꼈던 나는 그 제안이 너무나 반갑고 감사했다. 심지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기에, 더더욱 이 강의를 하고 싶었다.
자격 요건 검증부터 시범 강의까지 모든 과정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정식 강의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밤을 새워 강의 제안서를 만들고, 매일 시범 강의를 연습했다.
며칠 후, 기관의 본점에서 관련 부서 담당자들 앞에서 시범 강의 겸 면접 시간을 가졌다. 이 강의를 꼭 정식으로 맡고 싶다는 나의 절실함이 목소리에 스며들어 있었다.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범 강의가 끝났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2024년 3월부터 정식 강의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늘 부딪히는 성격이었다. 해보고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도망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새로운 기관에서의 첫 강의 10분 전에, 정말 순간적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강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소중한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들으러 왔는데,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강의를 하기에 내가 충분한 사람일까?
공공기관 강의장은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무대 위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구조라 한층 더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경험상, 강의 전에 수강생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 긴장이 한결 풀리는 법.
오시는 분들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어떤 점이 가장 궁금한지 물었다.
그러자 조금씩, 몸을 옥죄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첫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준비한 강의 자료를 한 장씩 넘겨가며 차근히 설명을 이어갔다.
총 4시간 연속 강의였다. 게다가 실습이 포함된 수업이라 강의장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넓은 공간을 가로질러 수강생들 사이를 오가며 실습을 확인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그렇게 강의를 마친 후, 마지막 질의응답까지 끝내고 담당자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갑자기 발꿈치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신발을 벗어 살펴보니 발꿈치가 까져 있었다. 평소 잘 신지 않던 로퍼를 신고 여기저기 걸어다녀서인 것 같았다. 수업하는 동안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빨갛게 뒷꿈치가 까져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 강의에 내 생각보다 더 진심이었구나.
발꿈치는 까졌지만, 첫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들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나는 강의를 복기하며 메모장에 피드백을 적어 내려갔다.
바로 다음 날, 두 번째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오늘의 아쉬움을 내일은 덜고 싶었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던 강의안을, 강의장에서 다시 봤을 때 수없이 느껴졌던 부족함을 보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메모장 한 페이지가 꽉 찼다.
“수업 시작 전에 이 부분은 짚고 시작해야겠다.”
“이 부분 설명이 모호했으니, 사례를 더 추가해야겠다.”
“실습 진행 시 시간을 좀 더 넉넉히 배분하자.”
머릿속에서 강의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다시 재생됐다.
그러다 보니, 민망한 기억들도 떠올랐다.
‘아, 이 말은 하지 말 걸…’
‘이건 이렇게 설명했으면 더 좋았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아쉬움이 반쯤 덜어진 하루가 되길 바라며
메모장의 두 번째 장도 채우고 또 채웠다.
강의 교안을 고치고 또 고치며, 노트북 속 폴더 하나 온통 PPT파일로 가득 찼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메모장은 아쉬움으로 빼곡해졌다.
처음 강의를 시작한 것이 3월이었는데,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2024년의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여느 때처럼 메모장에 피드백을 적어 내려가다 문득 첫 강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메모장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분량이 조금 줄어 있었다.
새삼, 나도 많이 성장했구나 싶었다.
어떤 강의의 기회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뒷꿈치가 까지는 것도 모르고 강의했던 첫날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강사가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렇게 나는,
올해도 다시 강의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