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놈이나 그놈이나

by 송화

정란의 가게는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던 사람들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와 도란도란 앉아 수다를 떨며 찌짐 한 장 먹고 가고, 노인정 할아버지들이 집에 가시는 길에 잠시 들러 막걸리에 찌짐 한 장 드시며 이런저런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하고, 회사 마치고 퇴근길에 직원들과 마주 앉아 찌짐 한 장에 사장님 험담 한 번,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였다.

정란은 사람들에게 살가웠고 스스럼없이 다가가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며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 애썼다.

봉식의 할 일은 주로 오전에 재료 손질을 하고 손님들이 오시면 주문을 받고 정란이 찌짐을 다 구우면 음식을 손님 테이블로 가져다 드렸다. 봉식은 가게가 잘되면서 돈 걱정에서 벗어나자,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과연 봉식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찌짐이나 나르며 인생을 끝낼 사람인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싫었다. 식당에서 그의 표정에는 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봉식은 요즘 거슬리는 단골손님 한 분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로 혼자 오시는데 자신과는 다르게 키도 크고 어깨도 딱 벌어져 건강미가 느껴지고 또 유머러스하고 호탕한 성격이라 가게에 와서 정란과 안부 인사도 스스럼없이 주고받고 정란의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고 가시는 중년의 남자 손님이다.

부인과 일찍이 사별하여 주로 혼자 저녁을 먹는다는 그 남자의 사연이 안타까워 정란은 손님이 오실 때마다 해물의 양을 더 넣어드렸고 눈치 빠르고 알량한 봉식은 그 마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불쾌함으로 가득 둘러싸인 봉식은 손님의 테이블에 찌짐 접시를 미끄러지듯이 던져 올렸다.

”아이고, 놀래라. 사장님. 허허허. “

”찌짐집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자주 오시네요. “

”이 집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 아입니꺼.

허허허. “

”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지요? “

”예? “

”아입니더. 맨날 와가 남의 마누라 염탐하나 싶었어예. “

”예? “

”아니면 말고예. “

”사장님, 말씀이 쫌 지나치시네요. 염탐이라니요. “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냅니꺼? 안 드실 거면 빨리 가이소. “

”아니, 사장님 보이소. 사과가 먼저 아닙니까? 찌짐 한 장 먹고 들어가려다 이게 무슨 봉변이냐고요. 장사하시는 분이 손님한테 이래도 됩니꺼? “

”장사가 뭐! 장사가 뭐! 장사하는 놈은 손님한테 한마디도 못 하나! 왜? 내 같은 놈은 남한테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살아야 되나! “


‘장사하시는 분’이란 단어에 꽂혀버린 봉식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전을 굽던 정란은 소란한 소리에 테이블 쪽으로 들어가 손님에게 사과하며 봉식을 말렸다. 손님에게 사과하는 정란을 본 봉식은 정란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사과를 왜 하는데! 저 놈이 올 때마다 눈까리 이상하게 뜨고 니 쳐다보는데 그라면 가만있나?! “

”미진 아빠. 진짜 왜 이럽니꺼? 그라지 말고 지금 집으로 들어가이소. 마무리 제가 하고 들어갈께예. 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더. 애들 아빠가 요새 바빠가지고 정신없어가 그렇습니더. 이해 쫌 해주이소. 찌짐은 포장해 드리고 값은 안 받을께예. 죄송합니더. “

정란은 봉식을 퇴근시키고 영업을 조금 일찍 마쳐 집으로 곧장 갔다.

봉식은 화가 덜 풀렸는지 마당에서 연신 담배만 풀풀 피워대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 남자가 음식 장사하는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가만히 앉아서 피해를 당했다는 생각만 줄곧 해댔다.

집으로 들어온 정란이 자신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이유를 물어볼 거라 생각했는데, 마당에서 눈이 마주치고도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뒷모습에 무시당한 것 같아 봉식의 화가 더욱 솟구쳤다. 봉식은 집으로 들어가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정란에게 다그쳤다.

”니 그 새끼하고 뭔 일 있나? 왜 내 말을 안 믿고 그 새끼한테 사과하는데? 내가 니 남편이다. 그 새끼가 아니라. “

”진짜 와 이랍니꺼. 아니라고예. 그 사람 그냥 가게 자주 오는 단골손님입니더. “

”지난번에 내 하루 빠진 날 그날 그 새끼 왔다 간 거 아니가? 그날 이후로 그 새끼 일주일에 한 번씩 오고 있잖아! “

”하... 진짜 미치겠어예. 미진 아빠. 아니라고 했잖아예. 안 그래도 피곤해죽겠는데 집에서는 좀 쉬고 싶습니더. “

”지금 니까지 내 무시하나? 묻잖아. 그 새끼하고 어떤 사이냐고! “

”말했잖아예. 아니라고예. 찌짐 먹으러 오는 그냥 단골이라고예. 왜 자꾸 안 믿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십니꺼. 예? “

”상상? 상상?

이게 지금 사람을 또라이로 보나!!! “

흥분한 봉식의 눈은 이미 돌아있었다.

대화라고는 보기 어려운 일방적인 봉식의 주장에 정란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벌써 몇 주째 똑같은 주제로 똑같은 주장을 펼치는 봉식이었다. 처음엔 그저 농담인 줄 알았는데 봉식은 몇 주째 자신의 주장을 사실인 듯 믿고 있었다. 정란에게 어떤 사이냐고 묻고 있지만 그건 사실은 정란에게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의심이, 의심이 아니라는 확신이 중요했다.

그래야 자신이 이상한 의처증 환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시던 단골손님은 그날 이후로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 정란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의심받을 일이 사라질 것이고 봉식이 자신의 대답을 믿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봉식의 상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변했고, 그 상상에 대한 믿음은 견고해졌다.

”그 새끼 집 어딘데? 둘이 거기서 만나나? “

”미진 아빠. 진짜 아니라고예. 집이 어딘지 내가 우째 압니꺼. “

”끝까지 속여봐라. 내가 증거 찾는다. 니 그때도 이렇게 발뺌하는지 함 두고 보자. “

정란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며 가장인 봉식 대신 열심히 돈을 벌고 있지만 정란에게 남은 건 말도 안 되는 의심과 협박이었다.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둘이지만 봉식은 정란의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크하기 시작했고 출근하기 전 얼굴에 눈썹이라도 그리는 정란에게는 싸구려라는 모욕적인 언어도 내뱉는 봉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게를 접을까 고민하던 정란이지만 예전 봉식의 퇴직 후 발을 동동 구르며 돈을 꾸러 다니던 때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고, 더 이상 집에서 살림과 뒷바라지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정란이었다.

하루하루 쳇바퀴 같던 날에 모처럼 정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옥단 이모가 부산으로 와 찌짐 식당을 찾았다. 옆모습이 유난히 어머니와 비슷한 이모를 보자 정란은 마치 어머니에게 자신의 첫 가게를 보여드린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이모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들렀다며 과일이며, 고기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셨다.

정란은 먼저 아버지 병에 관해 물었고 동생, 오빠들의 안부도 물었다.

”아버지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수술이 안 된다더라. 수철이네 집에 일단 모시기로 했다. “


오빠들은 결혼하며 다른 지방에서 터를 잡았지만, 남동생들은 정란이 있는 부산으로 와 장가를 갔고 서로 가깝게 왕래하였다. 수철이는 부산에서 시작한 일이 잘되어 형제 중 가장 여유로웠고 올케도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았고 아버지를 모시는 일에 당연한 도리라고 얘기해 모셨다.

그리고 정란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아버지가 오시면 자주 뵙고 그 덕에 동생들도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이거. 너거 아버지가 애들한테 전해 달라시더라. 이거 함 봐라. 애들 이름 꼬박 다 쓰시고 빳빳한 신권 뽑아가지고 넣으셨다. 노인 중에 제일 세련됐다. 너거 아버지. "

이모가 건넨 건 하얀 편지 봉투 3 장이었다.

봉투 겉면 보내는 사람이라는 글자 옆엔 -할아버지가,

받는 사람이라는 글자 옆엔 -미진, -영진, -유진 이렇게 정란 세 딸의 이름을 직접 적으신 봉투였다.

안에는 빳빳한 새 지폐 만 원권 한 장씩 들어있었다.

평소 손녀들을 만나도 별말씀이 없으시고 허허허 웃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다.

정란은 오랜만에 본 아버지의 글자를 보고 또 보았다.

”이모. 좀 있으면 저녁인데 저녁 먹고 오늘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이소. “

”김서방이랑 한 집에서? 내 무당이라고 속으로 엄청 무시하던데? 괜찮다. 이모 오늘 수찬이 집에서 자기로 했다. “

”그런 사람 아니라는데 이모 왜 자꾸... “

”이모 말 안 듣고 결혼하드만 어떻노?

니 사는기 말 안 해도 눈에 훤~하다. 김서방 그 지랄 맞은 성격 누가 맞추겠노. 애들이 불쌍해가 속상해 죽겠다.

이래 봬도 이모 용하다. 맞나, 아니가? “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매운 정란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이놈이나 그놈이나. 그놈은 돈이라도 많지. 니가 이래 찌짐 뒤집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노? 어머니가 아시면 가슴 찢어지지.. 그런데 금방 안 끝난다.. 좀 더 있어야 된다. 정란아, 조금만 더 참아라..

그리고 너거 둘째 영진이 술 마시면 안 된다?

이모 그 얘기해 줄라고 왔다. “

”이모. 걔가 지금 중학생인데 무슨 술입니꺼?

절대 술 마시고 그럴 애 아입니더. “

”나중에. 다 커서. 술 마시면 큰~일 난다. 알았제?

그 바람에 김서방이 정신 차리긴 하는데 그래도 그런 일 없는 게 낫다.

아이고. 이제 가볼란다. 정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