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구지찌짐

by 송화

1959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 10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성장과 민주주의 열망이 시작되던 작은 나라, 그중에서도 경상북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난초처럼 곧고 바르게 자라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한정란.

정란이 태어난 해에는 지원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최초의 국산 라디오 개발이 이루어져 시골 마을 사람들도 세상의 소식을 조금 더 빠르게 들을 수 있게 되던 해였고, 태풍 사라호의 피해로 도로가 끊어지고 집이 무너져 모두에게 자연에 대한 공포심과 상처를 남긴 해이기도 하였다.

정란은 6남 1녀 중 유일한 딸로 태어났다.

부모님, 오빠 둘, 남동생 넷 틈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은 그녀의 가족관계이지만 막냇동생이 태어나고 일찍 젖을 뗀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도 어머니 일을 많이 도왔던 정란이었다. 남자만 가득 인 집안에 딸을 겨우 하나만 낳아 어머니는 이따금 정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셨다.

남자 형제들은 학교를 마치면 골목이나 냇가에서 놀고 저녁을 먹을 시간에 들어오곤 했지만, 정란은 달랐다.

"정란아, 가서 좀 쉬어라. 나머지는 엄마가 해도 된다. 학교 마치고 놀지도 몬하고 일만 시켜가 미안타. 고마 들어가라. “

경상도 말투 특유의 딱딱한 말속에 고향 집 같은 푸근한 억양으로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어머니의 말투는 약하지만, 힘이 있었다.

"아입니더, 어머니 끝날 때 같이 들어갈랍니더. 오늘 다 몬하면 내일 더 해야 된다 아입니꺼. 어머니하고 같이 끝내고 갈랍니더.”


“배구 연습까지 하고 와서 힘들낀데 일찍 들어가도 된다니깐.. 이놈의 머스마들은 어디를 맨날 다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노! 정란아,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나?”


“예! 정구지찌짐 생각납니더! 어머니 찌짐은 먹어도 먹어도 계속 생각납니더.”


“그래. 날도 잔뜩 흐려가 비가 올라하나~ 찌짐 묵자.”

정란의 눈에 어머니는 철인 같아 보였다.

남산만 한 배에 등에는 어린 아기를 업고 집 앞 밭에서 오이, 깻잎, 상추, 배추, 고추, 부추를 심고, 키우고, 따시면서도 힘들단 말씀 한번 하지 않으셨다.

정란이 기억하는 시절부터의 어머니는 늘 배가 불러 있었고, 젖을 주며 밭일하시거나,

부엌에서 음식을 하시거나, 냇가에서 빨래하시거나, 집안에서 바느질하셨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아 이웃집에서 이불이나 옷을 만들어 달라거나, 고쳐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바느질을 해주시고 삯을 받으셔서 살림에 보태셨다.

또 음식 솜씨가 좋아 마을 사람들에게 소문이 날 정도였다. 정란은 그중에서도 정구지찌짐을 제일 좋아했다. 봄에 나는 정구지는 더욱더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아 단골 반찬이었다.

어머니의 찌짐은 가장자리는 마치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고, 가운데 부분은 폭신하고 촉촉하고 정구지는 아주 달았다.

간을 어떻게 했는지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감칠맛이 딱이었다.


형제들은 정구지찌짐이 반찬으로 올라오는 날이면 가장자리 쟁탈전이 일어났다.

“넷째야, 어디 햄이 건드리기 전에 젓가락 먼저 올리노?”

“햄들, 제발 우리도 좀 먹자. 조금만 뜯어가 줘.”

그중에서도 서열이 확실한 첫째, 둘째 오빠들이 먼저 절반쯤 뜯어가고 남은 절반으로 남동생들이 나누어 먹었다.

정란은 밥상에 올라오는 정구지찌짐의 가장자리를 먹어보지 못했다.

아니, 양보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한창 먹성 좋은 남자 형제들의 살벌한 소리 없는 전쟁을 매일 밥상 앞에서 겪다 보니 정란은 적게 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어머니는 그날 이후 정구지찌짐을 반찬으로 하는 날에는 부엌에서 몰래 정란을 위해 작은 찌짐 하나를 따로 구워주시곤 했다.

“퍼뜩 먹어라, 우리끼리 비밀이다. 알았제?”

정란의 입꼬리가 쓱 올라가는 것을 보신 어머니도 흐뭇함에 미소를 지으셨다.

날이 갈수록 정란은 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조금씩 굽어 있던 어머니의 허리가 막냇동생을 낳고 업고 키우며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굽어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허리가 버틸 만큼 버티다가 시위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힘들다는 말씀은 없으셨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늘 같이 붙어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병원이 가까이에 있지도 않았고, 병원을 갈 형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병원이라면 한사코 반대하던 어머니셨다.

정란은 밤이면 어머니의 허리를 주물러 드리며 내일은 허리가 펴지시길 빌었다.

좁고 낡은 부엌에서 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나르고, 상을 차리고, 방과 마룻바닥을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걸레질하면서 다짐했다.

얼른 커서 바느질을 배워 어머니 대신 바느질하며 삯을 벌어 병원에 모시고 가 치료를 해주고 싶었다.

뜨거운 솥 앞에서도 음식을 뚝딱 만들어 어머니의 허리가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돌보시는 오이, 깻잎, 상추, 배추, 고추, 부추를 대신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싶었다.

막내가 젖을 떼면 어머니 대신 정란이 막내를 하루 종일 업고 싶었다. 제발 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빨리 자라고 싶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정란은 모녀 관계를 넘어 서로 의지하고 때론 연민하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구지찌짐: 부추전

몬하면: 못하면

머스마: 사내

햄들: 형들

퍼뜩: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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