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마음의 준비

by 송화

어제, 토요일 저녁 10시쯤

술에 취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둘째 영진을 친구들이 데리고 집으로 왔다.

정란은 아주 늦은 시간도 아닌데 취한 영진을 보고 깜짝 놀랐고 봉식은 은행 일이 많아서 힘들어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요즘 은행 실적이 예전만 같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주변에 부탁할 지인도 더 이상 없어 봉식도 도움을 주지 못했기에 술을 마신 영진이 안쓰러웠다.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친구들에게 정란은 시원한 물 한 잔을 주며 왜 영진이만 많이 마셨냐고, 힘든 일이 있냐고 물었고 그들은 영진이 한두 잔 마시고 갑자기 졸리다며 엎드려 자더니 끝까지 깨지 않아 이렇게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며 또 사과했다.


친구들을 집으로 보낸 정란은 영진에게 씻고 자라고 깨워봤지만, 횡설수설하는 영진을 더 이상 깨우지 못해 불을 끄고 방을 나왔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식구들은 아침으로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각자 할 일을 했고

영진은 많이 취한 탓인지 오전에도 깨지 못했다.

첫째 미진은 잠시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와 점심 먹을 준비 중인 정란 옆에서 수저를 챙기고 있었다.


“미진아. 영진이 좀 깨워봐라.

배도 안 고픈가 무슨 잠을 저래 자노.”


미진은 방으로 가 영진을 깨웠지만 영진은 몸을 돌아누우며 등을 보였다.

미진은 더 자고 싶다는 뜻으로 알고 정란에게 그대로 전했다.

점심을 먹으며 롯데 자이언츠 야구 경기를 보던 봉식은 정란에게 물었다.

“영진이 지금 몇 시간째 자노. 이제 깨워라.

내일 회사 안 갈꺼가.

저러다 또 밤새고 출근하겠다.”


정란은 냉수 한 잔을 컵에 담아 방으로 가 영진을 흔들었다.

“영진아. 지금 한시다 한시. 무슨 잠을 이래 자노. 안된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내일 은행 문 닫나? 일어나라.”


정란은 영진의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빨리 냉수 한잔하고 눈 떠라. 어서.

무슨 술을 이래 마셨노.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정란은 영진의 손에 물컵을 건넸고 물컵을 받은 영진은 눈을 감은 채로 컵을 바닥에 놓았다.

영진은 자신의 발을 차가운 물컵에 담그려고 했다.

물컵이 작아 발이 들어가지 않자, 엄지발가락이라도 담그려던 영진이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미진은 웃었고,

정란은 영진의 등을 때리며 뭐 하는 짓이냐고

술 깨라고 잔소리했다.

봉식은 그 소리에 영진의 방으로 가

그녀의 행동을 보았고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 병원에 가자고 했다.


일요일이라 응급실 당직자만 있던 병원에 도착하니 어제의 상황, 먹은 음식, 약 등을 물어봤고

정란은 영진 친구들에게 들은 그대로 이야기했다.

의사는 아직 술이 덜 깬 듯하니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다.

봉식과 정란은 초조하게 대기하면서 술에 취해 잠든 것치고는 너무 오래 자는 영진에게 별다른 일이 없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 저녁 먹을 시간쯤 되었고 영진은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의사가 영진의 팔을 꼬집고 비트니 영진은 찌푸린 얼굴로 아프단 듯이 의사의 손을 옆으로 미는 반응을 했고, 의사는 영진의 이름을 부르며 반대편 팔과 몸 몇 군데를 더 비틀고 꼬집었다.

영진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의사의 손을 옆으로 밀었다.

“지금 술에 취한 행동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질병이 있어서 하는 반응이라고 판단하기엔 그것도 좀 이릅니다.

CT, MRI 촬영해서 정밀하게 진단해 보는 게 맞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라 지금 진행이 어렵고 내일 오전에 담당 선생님 오시면 촬영하고 진단까지 가능하십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썩 유쾌하지 않은 무언가가 나에게 곧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 정란은 자리에 앉아 그저 멍하니 어제의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술을 같이 마셨다는 영진의 친구 중 가장 친한 한 명에게 연락했다.

“응 수진아, 나 영진이 언닌데...”

“네, 언니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지금.. 영진이가 계속 잠만 자.. 혹시 어제 다른 일이 좀 있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영진이 아직도 잔다고요??”

응. 어제 영진이 술 많이 마셨나?”

“아뇨. 처음에 소주 한잔 마시고 그담에 반 잔 정도? 마시더니 테이블에 엎드리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피곤해서

한 잔만 마셔도 취하나 보다 하고 좀 자게 놔뒀어요.

원래도 영진이가 술이 약하고 또 취하면 그냥

조는 일이 많아서 어제도 저희는 그런 가보다 했어요.”

“그러면 어제 첫 술집이 끝이었나?

아니면 다른데 또.. 갔나?”

“1차 고깃집에서 끝내고 2차로 노래방 가자는 얘기가 나와서 다들 일어나는데 영진이가 계속 자길래 저희가 흔들고 깨우다가 이대로 집으로 데리고 가면 걱정하실 것 같아서 노래방에서 조금 더 재우고 깨면 집에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노래방 데리고 갔어요..”

“그럼, 영진이가 노래방에서는 깬 적 있나?”

“아뇨. 이상하게 계속 자길래 저희끼리 노래 부르고 놀면서도 왜 저렇게 잠만 자는지

이상하긴 했어요. 한 번도 안 깼어요.”

“그럼 혹시나 해서 말인데..

이건 내가 조심스럽게 그냥 한 번 물어볼게.”

“네..”

“혹시 1차 고깃집에서 너희들 말고 다른 사람도 테이블에서 같이 고기 먹었나?”

“네... 옆 테이블..”

“응 그럴 수 있지... 그러면 혹시 그 옆 테이블 애들 중에 혹시나... 이상한 애 없었나?”

“이상한 애요? 어떤 식으로 이상한...”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 이야기는 이상한 약 같은 거 말하는 거다.

혹시 그런 애 있었나.

내 상식으로는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이틀째 잔다는 게 말이 안 되어서 물어본다.”

“어.. 저희는 그런 애들은 없고.. 음.. 옆 테이블 남자 애들은... 어... 모르겠어요.”

“연락처 받아 놓은 애 있나?”

“저는 없고.. 다른 애들은 받았는지 물어볼게요. 다시 전화드릴게요...”


10분 뒤 선영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애들한테 전화 다 해봤는데 그 남자애들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면 남자애들이랑 테이블 합석하기 전에 영진이가 잤거든요.

영진이는 저희 앉아서 소주 한잔할 초반에 잠들었고 남자애들은 그 뒤에 온 거예요.”

“아....”


미진의 혹시나 하는 기대가 달아났다.

몸이 아파서 못 깨어나는 것보다 차라리 속아서 약을 먹어 잠든 거라면 그건 약기운이 끝난 뒤 깨어나면 그만이니 차라리 그게 맞길 바랐다.

하지만 정황상 영진이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인 걸 미진은 그제야 받아들였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속에 봉식, 정란, 미진은 병원에서 뜬 눈으로 하룻밤 지냈다.


아침 6시 회진하는 의사들이 보였고 영진은 곧바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촬영에 들어갔다.

시간은 흐르고, 반신반의하며 노심초사 기다린 봉식, 정란에게 의사 선생님 서너분께서 다가왔다.

“촬영을 했는데 음.. 결과적으로는 뇌경색입니다.

뇌혈관이 막혀서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뇌의 일부분이 손상되어서 잠만 계속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뇌 손상이 진행되었던 겁니다.

이 뇌의 손상은 조금 빨리 캐치하셔서 3시간 안에 병원에 오셨다면 어느 정도 진행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오셨고, 어제가 또 일요일이라....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란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봉식은 되물었다.

“자.. 잠시만요. 선생님! 마음의 준비라니요? 선생님. 무슨 뜻입니까?”

“지금처럼... 이대로 계속 잠만 잘 수도 있고... 뇌사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이대로 사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예???? 사망이라니요!!”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인데... 하..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취하고 있으니 한 번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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