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이 눈을 떴다.
정확하게 미진을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지만, 대답 없는 영진이었고 선생님은 시간이 조금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아직 말은 못 하지만 듣거나 기억력 부분은 자극을 주는 게 좋으니 끊임없이 말을 걸고 눈 맞추고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봉식과 정란은 영진이 눈을 뜬 것만으로도 세상 기뻤다.
미진은 영진에게 자꾸 확인시켜 주었다.
“영진아. 내 미진이 언니다. 기억나나?
여기 병원이다.
니 친구들하고 고기 먹다가 잠들었는데 지금 4일째인데 깨어난 거다.
기억나나? 안 나나? 괜찮다.
동생 유진이는 지금 대전에서 일하고 있어서
못 오고 있다.
유진이 기억 나제?”
영진은 눈만 끔뻑끔뻑거리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가족들은 다 괜찮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이까짓 대답은 대수롭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도 피어났다.
봉식과 정란, 미진은 배가 고파졌다.
교대로 식당으로 가 밥을 먹고 병실을 지켰다.
봉식과 정란은 영진이 깨어나고도 식당을 잠시 쉬기로 했다.
영진의 은행에서는 은행 내에서 일어난 사고는 아니지만 도의적 책임으로 산재 처리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추이를 지켜보며 복귀를 결정하자고 했다.
직업이 없던 미진은 영진의 간호에 8할이 자기 몫인 걸 직감하고 있었다.
정란은 집으로 가서 입이 까다로운 봉식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소분하여 집과 병원에 놔두었다.
급한 불은 껐으니 다른 일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진은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손에 힘이 없는지 숟가락 쓰는 방법을 잊은 건지 숟가락, 젓가락을 쓰지 않아
미진, 정란이 돌아가며 먹여주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간혹 이런 상황도 있을 수 있다며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다시 가르쳐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영진의 밥을 먹이고 지루한 미진이 병실에서 티브이를 틀었다.
마침, 개그콘서트가 방송 중이었다.
아프기 전 영진이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라 미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대로 놔두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갔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개그콘서트를 보며 영진이 깔깔깔 거리며 웃고 있었다.
깨어난 후 영진의 얼굴 근육이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미진도 같이 웃으며 영진에게 그렇게 웃기냐고 물으니, 영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질문에 대답하는 건 상호 작용이 된다는 좋은 신호였다.
마치 신생아처럼 되어 버린 영진은 걷는 방법을 몰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재활 훈련실을 다녔다.
다리를 움직이며 걷는 연습이 필요했고
수저 들기, 연필 쥐기, 글자 쓰기, 컵 잡기,
머리 감기 등등 일상의 모든 부분이 다시 리셋되었다.
병실 생활은 나름 재미있었다.
영진이 혼자서 걷기 시작한 날 미진과 정란은 신기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미진이 영진에게 연필을 쥐게 하고
한글을 가르치고 따라 쓰게 하며 소근육을 키울 때 영진은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배움의 속도가 빨랐다.
친구들이 방문하여 영진에게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며 기억력 테스트를 했지만, 영진의 입은 그대로 닫혀있었고 친구들은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영진의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밝은 얼굴로 방문했을 때 미진은 조금 기대를 해보았지만, 영진은 여전히 말은 없고 기억하지 못했다.
미진은 영진의 말하기 연습을 시켰다.
“언니 입 봐봐. 아기. 나무. 김. 영. 진. 니 이름 김영진.”
미진의 노력은 영진의 입을 움직였고 영진이 처음으로 뱉은 단어는 ‘언니’였다.
영진의 병실 옆 방, 옆 옆방, 옆 옆 옆방에는 뇌 질환 환자들이 많았다.
다리 한쪽이 마비가 와 쩔뚝이는 할아버지,
왼쪽 얼굴이 굳어버려 말이 어눌한 할머니,
침대에 계속 누워 계시는 아저씨.
영진이가 그중 제일 어린 환자였다.
지나가다 뵙는 환자분들, 보호자, 요양보호사님들께서는 영진이 걷기 연습을 하려고 복도를 서성이면 다가와 맛있는 간식을 주시며 안타까운 말씀과 함께 응원을 해주셨다.
“젊은 아가씨가 여기 왜 와가지고...
꼭 퇴원하세요.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네~
역시 젊어서 회복도 빠르다. 파이팅.”
실제로 영진의 회복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금방 언어를 배우고, 손에 힘주어 어렵게
글도 쓰고,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도 혼자 다녀왔다.
초반에 말하기 시작했을 때는 어눌한 발음이었는데 발음도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재활 훈련도 치료 회복 속도가 빨라 더 이상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물리치료사의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병실 생활 2주 만에 담당 교수님께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하셨다.
퇴원이 결정되었다.
봉식과 정란은 상의 끝에 서울 큰 병원에 영진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다시 한번 정밀 진단을 받고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정란과 미진은 영진을 데리고 서울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게 했다.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이렇게 영진이 스스로 걷고, 말하고, 밥을 먹으니 또 다른 기적이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신 교수님이시니 혹시
또 다른 기적이 숨어있지 않을까,
정란은 놓을 수 없었다.
어떡하든 영진을 예전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아직 이십 대 꽃 같은 나이의 영진을 이대로 살게 놔둘 수는 없었다.
교수님의 호출이 왔고 결과는 같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는 없었고, 환자가 가장 익숙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지내면 기억력 회복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셨다.
아무 소득 없이 정란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온 영진은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고, 마치 잊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화장실 문을 자연스럽게 찾아 열고 들어가고 침대, 책상, 옷장의 옷 등을 다 기억했다.
집으로 친구들이 오면 친구 이름을 조금씩 기억하기 시작했고 어느 시절의 친구인지 어렴풋이 기억했다.
동생 유진을 오랜만에 만난 영진은 유진의 팔짱을 꼭 끼고 슈퍼에 가서 사탕 사고 싶다며 졸랐고
밥 먹고 사준다는 유진의 말에 아이처럼 울었다.
영진의 병을 처음 본 유진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방 아이를 달래듯 언니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정란의 식구들이 영진의 병에 대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봉식은 알음알음 건너 들은 이야기를 정란에게 했다.
“남원에 한약방 하시는 분이 있는데 뇌 질환 환자가 많이 간다더라. 우리 거기 가보자.”
“남원예? 전라도예?”
“어. 내일 가자. 전화드렸다.”
봉식과 정란은 영진을 태워 전국에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다 찾아다니며 침을 맞게 하고 약도 지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학습의 결과인지 영진의 어눌한 발음이 많이 나아졌고 기억력도 꽤 많이 돌아왔다.
영진이 눈을 감고 누워만 있을 때는 제발 살아만 달라고 조상님께 빌던 부모는 이제 생사의 고비에서 벗어나니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영진은 남자 친구와 6년 정도를 만났다.
20대 초반에 만나 첫 연인이었고 주말이면 친구들과의 모임이 많은 영진을 위해 기다렸다가 집으로 데려다주는 착한 친구였다.
집이 유복해 20대 초반 나이에 차를 가지고 있어 또래 친구들보단 조금 편하게 데이트했다.
나서는 것보단 늘 뒤에서 봐주는 착한 심성을 가졌다.
영진이 은행에서 실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자신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영진이 우수사원이 되는 길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영진의 부모님은 그가 탐탁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 준비생이었고 이혼 가정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 후 새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지낸 그였다.
아버지 또한 새어머니와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셨다.
봉식과 정란은 그래서 그런지 얼굴이 어딘가 어두워 보인다며 영진에게 헤어지라고 몇 번 이야기했었다.
영진을 집 앞에 바래다준 그를 대문 앞에서 마주쳐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영진은 이혼 가정이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며 지금 각자 행복하게 지내시고 또 그가 착하게 자랐다는 말로 부모의 트집을 막았다.
미진의 핸드폰으로 영진의 남자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영진이가 어떤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보고 싶다며 혹시 밖으로 데리고 나와주실 수 있냐는 문자였다.
영진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해도 영진은 핸드폰에 영 관심이 없었고, 아직 답장을 보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미진은 그에게 집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밖에 나가면 어떤 돌발행동이 있을 수도 있어서 아직은 친구들이 다들 집으로 와서 만나는 중이니 특별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집으로 편하게 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