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와케이크 Nov 28. 2021

실패의 연속

 나는 실패라는 말을 쓰는 걸 몹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입에 머금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자존감을 한껏 깎아먹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진짜 암담한 실패를 겪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런 단어를 쓰는 것 조차도 실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인간 관계에서만큼은 남들만큼이나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노력을 들인 인간관계들은 모두 본전은 커녕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갔고, 내가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은 인간관계는 우연히 시작했던 그때처럼 다시 홀연히 사라져갔으며, 윗사람이 되어 베풀었던 친절은 항상 무례함으로만 되돌려 받을 뿐이었다. 이 모든 실패들 중에 확실한 한가지는, 내가 베푼 상대들은 결코 나처럼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첫 실패는 괜찮았다, 상처를 통한 성숙이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니,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라니, 그런 여러 말들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번째 실패부터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첫번째에 비해 많은 오답노트를 적어왔음에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여기선 거리를 두자.' '아 여기선 더 다가가지 말자' '아! 여기선 물러나주자' 와 같은 내 노력의 흔적들은 이제는 그저 내 실패를 찌르는 기억들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번째 실패를 맞이했을땐 더 이상 아무 말로도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이라서 못했다는 변명도, 내 실수를 인정하는 나름의 성찰들도, 세번째가 되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보답받지 못하는 고독한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차라리 내가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수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었다면, 최소한 투자한 애정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없어서 마음을 졸이는 바보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텐데 나는 통찰력이 부족한데에 비해, 사람을 자꾸 깐깐하게 고르려고 했다. 그러다 마음을 쏟을 만한 사람이 나타났다 싶으면 누가 봐도 티가 나게 기뻐하면서 경계와 의심을 한껏 내려놓은 채, 내 마음을 쏟아내었고, 그러다 상대가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몰려오는 배신감에 평정심을 잃을 정도였지만 그럴때마다 '인간관계는 다 똑같아'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충격을 완화해보려 했다.   


 이럴 때마다 어른들은 조언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다 그렇다, 기대하지 말아라, 기대를 하니 실망하는 것이다. 그저 적당히 지내는 것이니 마음 쓰지 말아라.' 하고 말이다.

 그럼 이 세상 어른들은 모두 체념하며 살아간다는 것인가, 그들은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을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란 말인가, 그들은 친구들과 모두 적당한 거리를 두며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것인가, 아무리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쿨하지 않은가. 나는 그런 얘기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성숙의 가치를 의심하곤 했다.


 나는 매 순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최소한 인간관계에서만큼은 나처럼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싫으면 싫다,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 말이다. 

 사람들이 진실하지 못한 것 보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의 진심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 잘못한 것처럼 되는 게, 이젠 지쳤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내버스를 타다 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