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를 보고 오열하다.

조림핑 때문에 눈물핑

by 쌀미

승진 누락의 여파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혹시 승진 이야기를 자꾸 해서 지겨운가.

그래도 당분간만, 조금만 더 들어주길 바란다.

이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흑.


아무튼, 총 맞은 것처럼 넋 나간 정신도 얼추 돌아왔고

폭싹 무너져버린 마음도 다시 재건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일을 한다.


적토마의 해 기운 덕분인지

오히려 마음은 더 뜨겁다.


유노윤호의 유행어처럼,


“내가 왜 쌀미인지!

내가 왜 승진이 되어야만 하는지!”


꼭 증명해 보이겠다는 열정으로 다시 달려 나가고 있다.


그렇게 괜찮아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최근 정말 재미있게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던

요리대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가

대망의 결승전과 함께 마지막 회를 공개했다.


최후의 2인은 (스포주의!)


매번 남다른 창의력으로

괴물 같은 요리 실력을 선보이던 요리괴물님,


그리고


모든 걸 다 졸여버리겠다는

조림핑, 조림인간, 연쇄조림마 최강록 셰프님이었다.


마지막 결승전의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


사실 이 주제를 듣는 순간부터 뭔가 찡-했다.

위기 감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남에게 내어줄 음식을 만들고,

나보다는 심사위원이 어떤 맛을 좋아할지,

어떻게 평가할지를 먼저 생각하며 요리하다가


오롯이 나를 위한 음식에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어려운 일인지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 드는 일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본인이 만든 '나를 위한 음식'을

두 심사위원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먹는 자리.


그 자리에서 최강록 셰프님이 했던 말이 유독 오래 남았다.


이전 라운드까지는

모든 걸 졸이면서 조림으로 올라왔지만,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말.


그리고 조림과 관련된 별명을 얻게 되면서

조림을 잘하는 척,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


그는 나를 위한 요리에서는 '척'이 아닌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뿌엥-!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맞아, 나도 척하고 있었구나.

잘하는 척,

잘 아는 척,

괜찮은 척.


최강록 셰프님의 말이

꼭 나에게 건네는 위로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


"수고했다."


정말 별 것 아닌 이 한마디가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내가 일궈 온 노력과 과정에 대해

정작 나 스스로는

승진 누락이라는 결과 앞에서

제대로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훅 밀려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우승의 의미를 되새기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자만하지 않겠다는 겸손을 전한

최강록 셰프님의 엔딩 멘트는


왜 그가 우승자인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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