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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지 Jul 13. 2024

취미인 글쓰기가 나를 우울하게 할 때

내가 2달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


#. 연재를 2달 동안 못한 이유


 나는 올 초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기껏 브런치 작가 신청에 통과해서 꽤 오랜 준비 끝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래놓고 나는 겨우 5편을 쓰고 무려 2달 동안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연재일로 설정한 목요일 전날이면 브런치에서 알람을 보내왔지만 애써 외면해 왔다.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하자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조금 정신없이 바빴다. 5,6월 내내, 이직(정확히는 프리랜서로 다른 회사와 계약하는 거지만) 이슈가 있었고, 어느 회사와 계약할지 또 이전 회사와는 어떻게 정리할지와 같은 커다란 고민거리들이 내 삶에 물밀 듯이 밀려왔다.

 또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업계 사람들을 만나 조언도 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각종 사교활동도 있었으며, 공모전 두 군데에  도전했고, 그 와중에 지방으로 2박 3일의 세미나가 있었던 데다, 바로 그다음 주에는 일본여행을 4박 5일로 다녀왔으며, 무려 5박 6일 동안 가족여행을 간 친구의 강아지 두 마리를 돌보기도 했다!! (헉.. 헉.. 적기만 해도 숨 가쁜 두 달이었다)

 정말이지... 백수가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실감한 나날들이었다. 내가 근 몇 년간 이렇게 바쁘게 산 적이 있었나? 아휴...


 둘째로, 다행히도 작가가 너무 행복해져 버렸다(??) 분명 연재를 시작할 즈음만 해도 크고 작은 우울함들이 현재진행형이었기에, 그런 감정들에 대해 쓰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심리상담의 효과가 너무 뛰어났던 걸까, 내 외부적인 상황의 변화 때문일까. (아마 둘 다 일거다) 나는 태어나 이렇게 자주 행복했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괜찮아졌고, 그래서 쉽게 내 안의 우울함을 붙잡고 끝까지 늘어지기가 쉽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그 우울함들을 다시 꺼내어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셋째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 나에게 드물게 우울함을 선사하는 일이 글쓰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본업도 글쓰기다. 그래서일까, 내 기준에 완성도가 낮다는 생각이 들고, 충분히 재미있지 않은 것 같으면 의욕이 지하까지 떨어졌다.

 잘 쓰긴 못해도 내 나름대로는 꽤나 공들여 쓰려다 보니, 쓸데없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쓰였다. 나는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것에, 본업보다 더 피곤해하고 스트레스받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보거나, 잘 쓴 에세이 책을 볼 때면 그들과 나의 글을 끝없이 비교하며 한없이 초라해졌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인생을 선택한 작가들의 삶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서인데. 감히 그들처럼 되길 꿈꾸기엔 나의 삶이 너무 무난해서, 소위 볼륨이 없는 삶이라서 쓸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그랬다.

 초라한 조회수나, 지난번에 비해 줄어든 적은 라이킷 수 따위에 나는 일희일비했고(희는 너무 작고 비는 그에 비해 너무 컸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밀리의 서재 7월 창작 지원금에 도전해 볼까 쿰척 대다가, 유튜브에서 이미 선정되신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보고, 또 그들의 에세이를 읽고 의욕이 상실되고 말았다.  

 겨우 손에 쥐게 된 이 드물게 안정적인 행복을 망가뜨리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취미라니. 이 무슨 비극인가 싶어, 글쓰기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 취미가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되잖아요


 얼마 전,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만의 작업공간이 생겼는데. 처음 해보는 작업(이전에는 타인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한 거였다면 완전히 나만의 작업을 하게 됐다)과 낯선 환경, 알지 못하는 동료들에 설레면서도 동시에 불안해졌다. 내가 쓰겠다고 한 글에 어떤 피드백이 돌아올지에 대한 걱정, 그들이 요즘 업계상황치고 꽤 좋은 대우를 해주었고, 나를 믿고 계약제안을 해준 분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고 싶은 욕심과 거기에 부합하지 못할 거란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전 첫 번째 기획안을 올린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았고, 도무지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어 이런저런 이 우울함을 잊게 해 줄 것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에 썼던 글들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 근데 잘 못한다고 해서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돈도 받지 않기 때문에 꼭 잘하지 않아도 되는 일. 왜 나는 고작 취미로 시작한 일에 그렇게 우울해했을까.


 예를 들어, 나의 현재진행형 취미 중에 요가가 있다. 약 1년 반 전 나름 초보반에서는 날고기던 내가, 중급 요가 새벽반에 들어갔다. 평일 출근 전, 새벽같이 일어나 요가에 오는 사람들인 만큼, 그들은 누구보다 요가에 진심인 사람(정말 요친자들...)들이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나도 꾸준히 수련해서 언젠가 요가고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생겼지만, 그들은 해내는 동작을 내가 해내지 못할 때 자괴감이 들거나 우울하진 않았다. 취미니까. 심지어 내가 돈을 내고 다니는 취미.

 그 외에 나의 수많은 취미 리스트. 요리, 베이킹, 베란다 텃밭, (온라인) 장바구니에 물건 담아두기, 등산 등 그들은 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요가고수, 요리왕, 베이킹짱, 도시형 텃밭러, 프로등산러가 되는 게 꿈이지만, 그것에 가까워졌다 멀어지더라도 너무 바쁜 현생 때문이라며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또 그들이 다시 나에게 가까워져 올 때면 기꺼이 만끽하고 멀어질 때면 또 멀어지게 내버려 두었다. 글쓰기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조금씩 의욕을 키워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분석 및 조사를 해본 결과, 내가 쓴 글이 조회수 대비(매우 적습니닷 ㅎ) 라이킷 수는 많다는 결론을 냈다. 어떤 글은 조회수의 과반수를 넘기까지 했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밀도 높은 반응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내 멋대로 해석을 내렸다.


 친구와 대화 중에 앞의 감정을 털어놓았더니, 친구 역시 취미로 춤을 배우는데 다 같이 공연을 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춤이나 노래를 좋아하지만 능한 편은 아니라, 자기 때문에 자꾸 틀리고 남들 앞에서 못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걱정된다고. 좋아하는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너무 잘하고 싶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거일테다. 그래도 조금은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휘뚤마뚤 써보려고 한다.

 어쨌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무척이나 소중한 거니까. 그 소중한 마음을 붙잡고 일단 계속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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