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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Lee Oct 10. 2024

황혼의 신혼

솟소한이야기

       황혼에 맞이한 신혼



이상선



  절친한 친구 가운데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소설가가 있는데 한번은 그가 나를 보고 “네 인생 스토리를 소설로 써도 몇 권은 나오겠다. 내가 한 번 써 볼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만큼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나이 70이 넘어 갈 때까지도 ‘영식(零食)님’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오다가 한순간에 삼식(三食)이 신세로 전락을 했다. 그래도 아내로부터 구박을 받는 대신 신혼 시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는 일이다.


  기복이 심한 삶을 사는 것을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한다. 웬만한 사람은 평생 한 번 타기도 어려운 롤러코스터를 나는 세 번이나 탔다. 내 인생열차에 동승한 아내의 심정이 그 때마다 어떠하였을까는 불문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집안에서 경영하는 사업체의 임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사회에 발을 디디면서 학창시절부터 뛰어났던 음주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문란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끝에 첫 번째 사업을 맥없이 망쳐버렸다.  그런 가운데에서 목사인 친구의 주선으로 내게는 과분한 규수를 맞이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45년 전의 일이었다. 결혼 후에도 나쁜 술버릇은 여전하여  자주 아내의 속을  썩게 만들었다. 술주정을 하다가 장모님께 들통이 나서 이혼을 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두 번째 착수한 사업은 다행히 운영이 잘 되어서 바쁘게 지내면서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내가 탄 롤러코스터는 천천히, 착실하게 정상을 향해 올라갔고 나는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보증을 서 준 친구의 회사가 부도기 나서 그 빚을 떠안게 된 우리 회사도 연쇄부도를 맞게 되었다. 롤러코스터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을 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평소부터 앓고 있던 십이지궤양이 음주 때문에 악화되어 장출혈을 일으켜 저 세상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지경이 되었다. 그 때 아내는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후 다시 사업을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힘차게 꼭대기를 바라보고 올라가게 되었다. 회사가 코스탁 상장이 되어 우량주로 인정을 받아 주가가 액면가의 백 배 이상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면서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사업을 하면서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고, 편법도 쓰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우리 회사에 공사를 발주해 주었던 공기업과 관련 있는 정치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탄을 맞게 되었다. 이른바 기획수사의 올무에 걸려든 것이었다. 내 운전기사와 동서인 행정부의 사무관에게 전세금 일 억을 빌려준 것을 뇌물증여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본의 아니게 ‘의앙국립대학’에 입학하여 10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롤러코스터는 다시 한 번 급강하를 했다. 두 번째의 시련이었다. 아내는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았다고 말한다. 그 때 우리 부부는 60대 중반이었다.

  풍비박산이 나버린 기업을 추스르는데 다행히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를 정비하여 정상가동 시켰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사업을 확장하여, 중소기업인 회사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 받아 대규모 사업체를 설립하여 최대 주주로 회사의 경영을 주도하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회사의 이런 실적이 정부에도 알려지면서 정부와, 정부 산하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제금융기관의 융자를 주선하여 줄테니 정부 산하 금융기관과 손을 잡고 한화 5조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일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이니만큼 잘못될 것이라는 염려는 조금도 하지 않고 이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일이 90% 이상 진척되어 마지막으로 국제금융기관의 요식절차인  이사회의 승인만 남아 있었는데 이사회를 한 주일 앞두고 정부 산하 금융기관이 당연히 제출해야 할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서 승인이 다음 이사회로 연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다음 이사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300여 명의 관련자들을 경악시킨, 국제금융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이사회를 마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정부와 추진하던 사업이 이렇게 무산되어버린 것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중소기업에서 중견업체로 도약할  기회를 갖게되었응 뿐 아니라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이 사업에 참여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해 올 정도로 회사의 위상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승천하려던 용이,  순식간에 개천에 쳐박힌 미꾸라지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 부부에게 세 번째 시련은 이렇게 찾아왔다. 이번에는  롤러코스터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갔다가 급전직하를 했으니 그 충격이 이전에 비해 몇 배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두 차례의 시련이 태풍이었다면 세 번째는 지진을 동반한 쓰나미였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두 동원하였다. 집을 팔았고, 노후를 대비해서 비축했던 돈도 모두 털어 넣었다. 뿐만 아니라 친지들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정상화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정부 산하 금융기관이 자기들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회사를 궁지에 몰아넣은 파렴치한 처사를 자행했고, 대기업의 전형적인 중소기업 잡아먹기 수법에 말려들어 회사는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해외의 사업장은 대기업에게 빼앗긴 기가 막힌 상황이 되었다. 투입한 자금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묶이게 되었고, 집이 날아가서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빚은 빚대로 쌓여있는 참담한 처지가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삼식이 신세가 되어서 24시간을 거의 아내와 함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평생을 사업에 미쳐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이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주었던 죄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의 눈치만 살피면서 지내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기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그리고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갖지 말라며 이번에 당신 계획대로 일이 잘 되었다면 나는 평생 생과부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노년에도 외롭게 지낼 뻔 했는데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당신이 세 끼를 집에서 먹으면서 부부가 노년을 함께 보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나와 살아오면서 내가 죽음의 문턱에 갔다가 오는 일도 당해 보았고, 남들이 안가는 국립대학에 가는 황당한 일도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긴(肝)도 없다며 이제 무리하게 사업할 생각을 접고   남은 삶을 둘이서 건강하게, 오붓하게 살자며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내처서  롤러코스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당신 덕분에 짜릿하고 재미있는 롤러코스터를 여러 번 탔다며 놀리기까지 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하루 세끼 식사를 잘 책겨 먹으면서 이전보다 더욱 건강해진 몸으로 70대 중반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황혼에, 평생 누려보지 못했던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새롭게 싹 텃고, 신혼 때 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  물질이 풍부했던 때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말이다. 

  우리에게 닥친 세 번째 시련은 고난이 아니라 이렇게 황혼에 신혼을 맞이하게 해준 축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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