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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고 Aug 16. 2024

내 수저 색깔이 뭐냐고요?

그런게 왜 필요하지?

나는 대학교를 10여 년을 다녔다. 나는 할 일을 찾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대학, 다른 학과로 편입을 했고 졸업 후에 첫 대학교에 재입학하여 영어교육과를 다시 복수 전공했다.

그래서 받은 학위는 3개. 내 이십 대의 훈장이었다.


처음에는 교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국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NGO나 기자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방과 후 교사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초등학교였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아이들과의 우정, 그 감동으로 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동화 같은 이야기 같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ㅎㅎ)

 그래서 다시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 공부하겠다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정을 했을까.

영어교육과를 다시 공부했지만 전공이 쉽지만은 않았다.

4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임용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가시밭길이었다.

불안감에 잠이 못 드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밤낮이 바뀌었다.

지금에야 삶은 내 앞에 펼쳐져 있고 너무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서른이 넘어가고 있었고 내 앞에 있는 벽은 넘어서기 어렵다는 생각.

그리고 시간 들려 학위를 따고 했는데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임용고시를 치렀고 낙방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임용고시를 빨리 포기했다. 나는 이미 서른을 넘었고

지금 여기서 공부를 더 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더 유리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간 맥도널드, 커피숍, 학원 등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마땅히 진짜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다는 것도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기간제교사이든 학원이든 취업을 해야겠다고.


나는 지역교육청 홈페이지를 열었다. 12월이었다.

나는 기간제교사 계약시기라던지 뭔가 관련된 요령 같은 걸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거기서 제일 처음으로 모집하는 곳에 넣고 제일 먼저 연락 주는 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지역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시골의 고등학교가 올라온 것을 보았고 거기에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러 갔다.


낡은 시골학교. 9개 학급의 사립고등학교였다.

들어가니 디귿자로 배열된 소파의 정점에 이사장이 있었고

그리고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아마도 동과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다른 심사위원의 얼굴을 볼 새도 없었다.

 나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거지깽깽이였고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지난 경력에 대해서 물어보고

학업에 관심 없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진짜 말이가 방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던 졌다.


이사장의 첫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부모님은 뭐 하시고?'

'네??'

나는 도대체 내가 기간제교사를 하는 것과

내 부모님의 직업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원래 이런 건가? (8년 전 이야기다. 그래도 시골이고 사립이라 이런 질문이 가능했었던 듯)


'그래서 자기 수저가 무슨 색깔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아. 압박면접이야. 뭐여.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주위를 둘러봤더니

선생님들이 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원래 기간제교사는 이런 것들도 물어보는 게 관례인 건가?

면접이고 질문이니 답을 하고 뭔가 건설적인 다른 질문을 기다리는데

이사장이 말했다.

'프리토킹은 가능한가?'

나는 세계 어디든 여행 가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두렵지는 않으니까 과장 한 스푼)


그랬더니 주위에 교장선생님을 보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학교 원어민하고 이야기 나누면 되겠군'

'쯧 근데 그 외국인 깜둥이야. 깜둥이. 깜둥이를 데리고 와서는.'


고추냉이.

첫 면접은 와사비 맛이었다.

학교라 해서 뭔가 정의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상식을 파괴하는 쪽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다섯 학교를 계약했고 수많은 면접을 본 지금에야 생각해 보면

첫 번째 학교의 면접이 제일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면접에서 멘털 털리고 집에 가는 길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전화가 울렸다.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내일 당장 계약하러 오라고 했다.


번갯불 콩 구워 먹는 순간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이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교육청 공고문에 명시되어 있는 날짜도 아니었고,

면접하고 돌아가는 당일에 전화로 내일 당장 오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단지 내게 일자리를 주는 첫 학교와 계약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근무하고서야

예전에 선생님이 한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이 도망가 버린 경우가 있었다고..

계약서에 도장 찍고도 안 오는 사람도 있었다니.

선생님들도 상도덕이 없는 사람들도 많구나.


그리고 이 모든 게 도망가라는 사인이었다는 것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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