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그만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나는 이 직업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보루였다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공부도 오래하고 길을 찾아 여기까지 돌아왔기에 이 일이 아니라면 나는 또 어떻게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세상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삶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사람들이 정말로 사회의 여러곳에서 재화를 벌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의 나는 시야가 넓지 못해서 그런 것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견뎌내야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내 손으로 그만두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하는 동안 많은 선생님이 처음 시작하는 나를 격려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셔셔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나를 유독 힘들게 했던 분들도 있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분은 같은 동과 기간제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일찍 학교에 정착하여 거의 4년을 근무한 선생님이었다.
그 외에도 나보다 훨신 경력이 많았는데
처음 학교에 근무하고 그리고 본가에서 떨어져 타지생활을 하는 나는
그 분과 잘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그 분은 이미 커리어를 이룬 사람이라 느꼈고
많이 배워야 하는 선배교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처럼 대했다.
주변에 다른 선생님들이 있을때는
내게 다가와 어려운일이 없냐며 자기한테 이야기 하라고 가르쳐준다고 해놓고
막상 둘이 있을 때 물어보면 쌀쌀맞게 대답하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일을 익힌다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 것을 보고 교감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칭찬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갑자기 퇴근시간만 되면 나에게 친한척을 하며 같이 나가자고 했었다.
먼저가시라고 해도 세 네번 더 물었다. 그냥 나가자고.
마음이 쓸쓸한 나에게 주말에 뭐할건지 물어보길래.
어디 식당이 괜찮아보여서 가볼까 한다고 하고 선생님은 뭐하세요?
라고 묻자. 나에게 그런데는 혼자가세요. 라고 했던 사람.
처음 공개수업을 하게되어 떨린다는 나에게 잘해보라는 말대신에
자기는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 누구에게 칭찬을 받았는지 이야기하고
막상 공개수업을 잘 마치고 선생님들께서 격려해주시자
동과인데도 수고했다는 이야기 없이
교감선생님이 준 코멘트(시간관리잘하라는)를 읽으라고
했던 선생님.
근무시간에 나는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생색내며 도와주고
자기가 희생해서 나를 케어하는 척 하고는
결국에는 나랑 있을 때는 모멸차게 나를 비판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원하는 학년이 있냐고 해서
3학년인데 선배선생님께서 원하셔서 그냥 2학년 하기로 했어요.
라고 하자 그걸 이간질해서 그 선생님과 틀어지게 하고
왜 그런이야기를 했냐고 했더니 자기한테 말한거는 해결해달라는 의미아니였냐며
왜 자기한테 따지냐고 했던 사람.
이사장님께 추석때 선물을 하고 개교기념일에 케이크를 사들고
이사장실에 들어가 개교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던 사건은 정말 기억에 안남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슬픈 것이 같은 기간제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동과인경우에는
내년의 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이가 마냥 좋을 수는 없다.
인구가 줄어들고 학생수가 감소하면서 학급이 줄고
당연한 수순으로 근무할 수 있는 교사의 수는 줄어든다.
나는 7여년의 교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고
그리고 학생수때문에 계약이 만료된 경우도 왕왕있었다.
그러기에 인구절벽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비정한 사실이지만 학교는 야생이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혀있고
그에 더불어 선생님들끼리의 파벌도 존재하며
기간제 교사를 하게되면 그 학교에 뿌리가 없고 세가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명심한 것이 있다.
학교는 친구를 사귀는 곳이 아니고 일하는 곳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