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제물포역 2번 출구

프롤로그

by 태지인

900만 수도권 출퇴근자 중 한 명인 내 친구는 오늘 아침 1호선 운행지연으로 합정에 있는 회사에 무려 1시간이나 지각을 했다고 한다.



역에서 발행하는 운행지연사유서 대신 친구가 회사에 제출한 사진





가장 바쁜 출퇴근시간, 열차 지연 사유는, 안타깝게도 새벽 5:30 경 한 남자가 영등포역 선로에 뛰어들어 부산행 KTX 열차에 치여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넋 놓고 해당사건 관련 인터넷기사들을 훑어보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카페 오픈 준비를 마쳤다.



첫 개시 손님을 기다리며,

열차를 향해 뛰어드는 남자를 본 기관사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다가,

열차의 정상운행을 위해 온전치 못했을 남자의 시신을 신속히 선로에서 수습해야만 하는 코레일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다가,

왜 유독, 1호선에서 투신사건이 많이 일어날까 가슴이 서늘해지다가,


1호선,

영화 기생충,

송강호가 모멸감을 느끼던 그 순간,

그리고

1호선 타면 나는 냄새...




막차를 놓치지 않게 위해 허겁지겁 올랐던 1호선,

술, 담배 냄새, 땀내와 온갖 체취들이 빼곡한 밀도로 들어차 숨 막힐 것 같은 열차칸. 그것도 잠시, 서울에서 인천까지 오는 동안 어느덧 익숙해지는 냄새...


의식의 흐름이 어느덧 후각으로 전이된다


-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환청인가? 아, 이건 환청이 아니라, 환향이라고 해야 하나?


- 환향이, 아닌데? (킁킁) 이건 진짜 나는 냄샌데? 더워지니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나? 배관이 진짜.. 하, 구옥은 정말 답 없다.


오래된 구옥에 만들어진 카페임을 감출 길 없는 냄새




폭염의 날씨, 지나가는 사람하나 없는 골목길.

오래된 길 위, 오래된 집들 중 하나,

40년이 넘은 구옥 1층에 자리 잡은 나의 카페.


개시하지 못한 채 어느덧 한 시간이 흐르자,

내 정신건강도 심히 염려되기 시작한다.


마치 상승장 최고점에 사서 반토막난 셀트리온 주식처럼, 반토막난 카페매출은 오를 기미는커녕

바닥인 줄 알았더니 반지하가 나오더라는...!




송강호 가족들이 사는 반지하방에서 누군가 외친다.


‘여기 사람 살아요!!!’


1호선 끝자락 제물포역 2번 출구,

역에서 나와 철도를 따라 50미터쯤 걷다 보면 폐지 줍는 노인들 뿐인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누군가 외친다.


‘여기 카페 있어요!!!’






전국의 카페 수 8만 3천 개.

폐업한 자리에 또 카페가 생기는, 면적비율 개체수로 따지자면 열대우림 속 맹그로브보다 더 무성하다는 대한민국의 카페 창업현실에서 3년째 영업 중인 생존자 입니다.


성공신화 서민갑부류의 성공기에 나오는 ‘장사,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 식의 대박노하우, 0핫플레이스 등극노하우 따위는 없어요. 게다가 카페 이야기인데 커피 얘기는 일도 없고요.


쇼 미 더 머니 우승보다 더 힘들다는 리얼리티 카페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나 고군분투랑은 거리가 먼

괜히 나혼자만 심각하고 진지한

변두리 동네 골목, 작은 카페의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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