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2x3 아이덴티티)

cafe alone (나홀로 카페)

by 태지인


오픈 한 시간 전, 모든 직원들이 카페에 도착한다.




페르소나1. 바리스타


바리스타는 응당 커피만 신경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 디카페인 종류도 다양하고 에이드, 티 같은 논커피류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종 수제청은 물론, 말차시럽이나, 바닐라시럽 등도 직접 수제로 만들어 상시 대비해야 한다. 수제는 돈도 고생도 배로 들지만 그러한 수고로움이란 손님이 이 작은 골목 카페에까지 기꺼이 찾아오는 수고로움에 비한다면야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리라.

커피라면 응당 고가의 스페셜티 원두라면 만사오케이라 믿었던 생각은 애초에 산산조각이 났다. 작은 카페이지만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등등 다양한 산지의 최고급 원두를 블렌딩해 커피가 가진 다양한 맛을 고객에게 선사한다는 포부는 그저 초짜 바리스타의 희망사항 같은 것이었다.


-이 원두는 다크초콜릿과 시트러스한 감귤향이...

-산미 있어요?


-이 원두는 단맛을 바탕으로 훌륭한 밸런스가...

-산미 있어요?


-이 원두가, 파나마 게이샤 원두를, 폴바셋이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그래서 산미 있어요?


산미를 싫어하는, 한국인은 다크로스팅의 민족. 묵직하고 씁쓸하지만 고소한 커피가 가장 모두를 만족시켰다. 손님들은 바리스타와 함께, 다채로운 맛의 향연으로는 떠나는 커피여행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입맛은 크게 바뀌지 않을뿐더러, 항상 내가 아는 그 맛, 내가 자주 마시던 그 맛을 원했다. 최고의 커피 맛은 최고급 스페셜티 원두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마시는 누군가, 그날의 분위기, 혹은 그날의 날씨, 그날 나의 기분이 좌우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커피에 대한 극찬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동네 할머니 네 분이 카페에 방문하셨을 때였다. 그저 무조건 달달하게 해 달라는 요구에 아이스 라테에 시럽을 다섯 펌프나 넣으며 할머니들의 심혈계기관을 걱정했지만, 할머니들은 한 모금 마시자마자 동시에 입을 모아 ‘이 집 진짜 커피 잘하네’를 연발하셨다.

그때의 희열이란!


한 잔의 커피를 완성하기까지, 그라인딩, 커핑, 에스프레소 추출까지 일련의 퍼포먼스에 실수가 없도록, 매일 같은 품질의 커피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바리스타의 자세가 어쩌고 저쩌고,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어쩌고 저쩌고 했지만 그저 고객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잘 듣고, 그대로 해드리는 것으로, '시럽 왕창'으로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닥인 시럽 다섯 펌프 달달이 라테가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커피이다. 타인의 취향을, K-할모니들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 결과였다.


할모니들이 항상 아빠다리로 앉으시는 지정석




페르소나2. 베이커


이제 카페의 시그니처는 커피가 아니라 디저트가 되었다. 프랜차이즈, 개인 카페 너나 할 것 없이 전국의 카페들은 지금 디저트와의 전쟁 중이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카페는 오픈과 함께 디저트 카페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해왔다.

자고로 한국인은 커피&달달이의 민족.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쿠키, 스콘, 휘낭시에 같은 구움 과자류부터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매일 매장에서 구워내고 있으며, 시즌에 맞는 신 메뉴, 한정 메뉴 또한 수시로 개발하여 디저트 라인업들을 다채롭게 바꿔가며 다양한 디저트들을 선보이고 있다.


디저트라면 응당 맛은 물론,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내가 먹는 디저트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디저트는 패션 같은 것이다.

오늘도 패션만큼 빠르다는 디저트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다 보니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식으로 디저트 메뉴가 점점 늘어나, 급기야 김밥천국보다 메뉴가 더 많아지게 생겼으니 이것이 자승자박이 되어, 손만 보면 내가 베이킹을 하는 건지 공사판에서 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네일케어비용을 산재처리 해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안광이 밝아지면서, 대통령투표보다 더 신중하게 디저트를 고를 때, 디저트 한 입에 '아 이제 살 거 같아' 하며 고된 일상에 지쳐있다 내가 만든 디저트로 충전되는 것을 볼 때, 내가 분명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즐거워진다.


일이 즐거워야 끈기가 생긴다. 나는 아무래도 이 일을 오래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호랑이 기운 솟아나게 하는 갸또 쇼콜라




페르소나3. 알바생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사실 설거지와 청소를 제일 많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장은 내가 힘든 기색이 보일라치면 네가 우리 카페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한다고 추켜세웠지만 그렇다고 패이를 올려주진 않았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매장청소를 시작한다. 테이블과 의자, 창틀까지 말끔하게 닦아내고 살균제도 뿌려준 후 화장실로 들어간다. 변기커버를 올리니, 오줌자국이 있다. 내 것은 아니다. 응가가 아니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누구의 흔적인지 중요하지는 않다. 닦아내면 그뿐.

화장실 거울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손님이 카페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얼굴이자, 카페 문을 나서기까지 최전선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이란 카페의 꽃이다.

그런 내게 사장님은 라테아트 잘하는 것보다 손님에게 한 번이라도 더 웃는 게 중요하다며 손재주와 일머리는 없어도 잘 웃어서 좋다는, 칭찬인지 멕이는건지 모르겠는 알바둥절한 말을 하신다.

그렇게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에게 크게 활짝 웃어 보인다.


매일, 디저트 전체 솔드아웃의 행운을 빌어본다




페르소나4. 홍보직원


매장에 버터향이 진동하더니, 갓 나온 쿠키가 매대에 진열되자, 셔터소리와 함께 홍보팀장의 손이 바빠진다. 오픈과 동시에 카페 인스타피드에도 게시물이 업로드된다.


인스타는 고객이 방문 전 카페의 분위기를 미리 느껴보고, 정보 탐색 후, 오프라인 방문을 결정짓는 중요한 수단이자 고객과의 소통공간이다. 특히나 번화가도 아닌 동네 변두리 골목에 위치한 우리 같은 작은 카페에게 있어 카페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는 절대적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메뉴 소개, 이벤트 홍보, 카페매장과 디저트 정보, 공지사항 등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감성을 공유하며, 카페의 톤 앤 매너를 결정짓는 것도 인스타의 역할이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자연스럽게 카페에 대한 고객의 인식을 확장시킨다. 그래서 인스타를 통해 카페에 대한 고객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항상 카페를 노출시켜야 한다. 항상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카페의 비주얼리스트들이자 크리에이터들이다. 그냥 쿠키일지라도 다양한 스타일링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단순한 음식 사진이 아니다. 아트웍이다. 공간과 색감과 조명과 디자인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을 사진 스토리 동영상 쇼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인다. 하지만, 인스타 팔로워수는 정체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좋아요’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sns이벤트를 해야 하나 싶다.


작금의 시대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물며 작은 카페는 말할 것도 없다.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들을 쥐어짜느라 머릿속은 늘 고군분투 중이다. 단지, 카페에 온 손님이

인스타보고 여기까지 왔어요’

하는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말이다.


디저트도 포토제닉해야 살아남는다






페르소나5. 디자이너


이미 진부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이제 고객은 커피가 아니라 공간 때문에 카페에 온다.

일상의 커피를 가장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즐길 수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기 있는 카페가 된다. 식물원, 주유소, 항공기, 우체국 등 갖가지 컨셉춸한 카페가 등장하고, 루이뷔통, 구찌, 디올, 프라다 등 명품브랜드에서도 카페를 만든다. 카페가 내 집 같이 편할 수는 있어도, 집 같으면 큰일 나는 것이다. 커피값은 커피의 값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대한 지불에 더 가깝다.


그렇게 고객이 가고 싶은 공간이 되기 위해, 카페의 외관에서 실내까지, 인테리어, 가구, 조명, 소품에서부터 디저트박스, 테이크아웃컵, 포장용지, 접시, 냅킨 같은 아주 자잘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색감과 로고 디자인으로 우리 카페 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감성을 조성한다. 카페 안에 흐르는 음악, 창가에 비치는 햇살까지도 공간의 밀도를 좌우하니,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사소하게 지나 칠 수 없다. 디자이너 마인드로 무장해 카페를 비일상적 공간으로 연출해야 한다.


디자인은 거창한 게 아니다. 액자 위치나, 의자 하나 놓으려고 여기 놨다 저기 놨다 고민 끝에 결국 원래 위치에 놓게 되는 것도 디자이나 마인드다. 더 있어 보이려고, 더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그 모든 게 다 디자인이다. 이러한 디자인이 너무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객으로 하여금 이 구석진 변두리 골목까지 카페를 찾아오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순수하게 입으로 느끼는 것은 30%, 나머지 70%는 시각과 후각에서 결정된다 -백종원-‘


그 70%를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들이다. 작은 카페일수록 나 같은 디자이너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페르소나6. 사장


우리 카페직원들은 왜 하나같이 다들 디테일하지 않을까?

에이드에 들어가는 로즈마리의 길이는 왜 매번 다를까?

쿠키 식감이 어제오늘 다른 이유는 장마철 습도 탓일까? 오븐 탓일까? 애초에 베이커가 만든 반죽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

왜 고객의 디엠문의에 바로 답변하지 않는 걸까?

알바생은 지난번에 왔던 손님이 재방문했는데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안면인식장애라도 있는 걸까?

직원들은 왜 나처럼 해줄 수가 없는 걸까? 이미 사장인 나보다 충분히 많이 가져가고 있으면서...

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꼰밍아웃과 다를 바 없는 걸까?


손님얘기를 잘 듣고, 직원얘기를 잘 듣고,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있지만, 매사에 돈돈거리게 되니 점점 소인배가 되는 기분이다.


비록 작은 카페사장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장 아닌가. 자고로, 사장이란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제시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 가장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고, 끊임없이 돈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사장이었다. 이런저런 살아온 다양한 경험과 연륜, 좋은 성품 만으로 좋은 사장이 되는 것도,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영업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업하는 카페 52% 그 안에 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이 카페 안에 오직 나뿐인가?

빗방울이 떨어질라치면 먼저 가게문 앞에 우산꽂이를 갖다 놔야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가?

다음 손님이 미처 못볼꼴 보기 전에 변기에 붙은 대변을 솔로 박박 문질러야 하는 것도 오직 나뿐인가?

잘못 나간 음료와 잘못 나간 디저트로, 고객에게 미안무새가 돼야 하는 것도 오직 나뿐인가?


미래의 기대에 대한 무력감이 턱까지 차오른 지금, 나는 도대체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손님 얼빵해도 되요?

사장 네? 얼빵이요?

손님 얼빵해도 되냐고요?

사장 (......me?)

손님 이거 빵 얼려먹어도 되냐고요.



얼빵도 모르는 얼빵한 사장, 나란 사장.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나였다.

결국 가장 변해야 하는 사람은

나였던 것이다.


얼빵하면 더 맛나는 버터바와 브루키




1인카페사장에겐 여러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능력자여서가 아니다. 최저임금상승, 국제원유가격폭등에 따른 물가상승의 결과다. 카페지출비용에서 제일 비중이 큰 인건비를 필사적으로 줄여야만 한다.


1인카페에서 나는 6개의 페르소나를 지닌다. 나는 그 모두이며, 그 모두는 나 자신이다. 어느 하나 따로 빼놓을 수 없고,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다. 그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고객의 맘이 움직인다.


처음부터 1인카페였던 건 아니었다. 매출이 크게 늘고, 카페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원이 고용되는 것이 수순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과 매출은 비례하지 않았고, 나 자신의 인건비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혼자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학습, 훈련이 되었고, 저절로 일머리가 생기니 혼자 해내는 직무의 범위가 점점 늘어났다. 손님도 혼자서 감당할 만큼만 조금씩 늘어났다. 그렇게 애초에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도 점점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 경영, 마케팅, 점점 각 파트에서 프로페셔널해지고,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해내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자연스럽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최적화된 일구조가 습득된 것이다.

특별한 방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태풍이 오던, 폭설이 내리던, 같은 시간 문을 열고 닫고, 카페를 쓸고, 닦고, 팔지 못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같은 양의 쿠키와 스콘을 지겹게 만들고, 지겹게 커피를 내렸을 뿐이다. 수많은 시간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생활의 달인이 왜 달인이 되는지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단순 노동이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게 단순 노동이었다.


과거의 나는 비싼 원두만 쓰고, 디저트만 맛있게 만들면, 입 소문이 나서 알아서 이곳까지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카페를 열었다. 허나, 입소문 내 줄 손님이 오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의외로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제주 단호박, 해남 꿀고구마, 구좌 당근 등 생물이 듬뿍 들어간 건강한 디저트와 스페셜티 원두도, 나의 관심사일 뿐이었다. 카페 창업도 그렇다. 내 인생의 중대사이지만, 남들에겐 널리고 널린 카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무식하면 용감해서 창업한다는 사실을.


1인카페 3년 차,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많은 양의 일을 해낸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비즈니스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관점이 생겼다. 시야가 넓어졌달까, 내공이 쌓이는 걸까


하지만 반대로 오히려 점점 잘 모르겠고,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확신이 점점 떨어진다. 딥러닝이 필요한 건 컴퓨터가 아니라 사장이란 생각이 든다. 사장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 천지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오직 부족하다는 것뿐이다.

과거의 나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금의 나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카페,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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