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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Nov 07. 2023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

브런치북 첫 발간 후 생긴 일

2020년 겨울 카페 개업 이후, 나 혼자 카페를 운영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와 그간의 소소한 카페 관련 에피소드를 담은 ‘카페, 나 혼자 한다’ 브런치북을 발간한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카페 나 혼자 하고 있다.

같은 시간에 매장 오픈을 하고, 커피를 내리고, 스콘과 쿠키를 굽고, 손님을 맞이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브런치북을 발간한다고 갑자기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이전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삶은 흐른다. 다만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이 듦만을 확연히 체감하면서.


하지만 이내 서프라이즈 한 일이 벌어졌다. 그게 왜 하필 이 시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북 발간 후, 카페 단일매출 최고기록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간 카페운영에 있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에 알았더라면!’ 했던 것들을 개선하고, 커피보다 중요한 것들에 더욱 집중했던 결과였을까. 더욱이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이 아니기에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기록이 되어, 우리 카페 역사에 남을만한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그간의 고군분투에 대한 보상을 넘어서, 고무적 성과를 이룬 영수증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 맘 속에선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한 카페사장의 성장감동서사가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어 점점 가슴이 웅장해지는 자아도취의 시간을 잠시 즐겨본다.


I am 행복이에요..!


하지만 모든 대오각성의 시발점이 된 매출 22000원의 그날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닌 것처럼, 단일매출 117 만원의 날도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역시 ‘관계’가 있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거품이 적당한 맥주 한잔과 같은 관계

가끔씩 오래 보는 관계

나에겐 그런 관계의 단골손님이 있다.


내가 만든 고구마치즈케이크를 너무 애정하고 매번 엄지 척해주는 손님에게 나 역시 애정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표현해 주는 사람에게는 나도 내 나름대로의 감사함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표현이어라)


아가씨였던 손님이 여전히 아가씨 같은 얼굴로 결혼을 하고 나서도, 게다가 임신을 해서 배가 이만큼 불러서까지 카페에 오는 그 걸음걸음이 너무 고마워서 더 신경이 쓰이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결국 그분이 쿠키를 300개를 주문하시더라. 그렇게 내 생애 최고의 매출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




매일 오는 단골이란 없다.

어제오늘 왔다가도,

달에 한번 오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어서 오기도 한다.

그래도 단골은 단골이다.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조차 그러한 관계는 절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영업을 한다는 것

카페를 한다는 것

그 안에는, 손님이 많아도, 손님이 없어도, 매장에 갇혀사는 기분으로 매일을 버티는 장사의 고단함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행여라도 그 고단함이 내 카페에 묻어날까 염려된다


단지 생계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 그 어느 누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내 카페에 온 손님을 그런 초라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초라한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손님에게 닿지 않을까? 그런 곳 따위에 어느 누가 오고 싶을까?


장사 스트레스로 인해 반사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들고, 깊은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감정은 또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에도 나의 하루는 흘러간다. 나의 인생이 흘러간다. 그럴수록 나의 일상을 지켜나가야 한다.

일터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틴대로 오늘 할당된 쿠키와 스콘 반죽을 만드는 것. 카페 클로징 이후에도 집으로 귀가해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과 오늘 하루를 얘기하는 것. 지나가는 감정보다 그러한 나의 일상이 더 소중하다.


마음에 구멍이 생겨도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하던 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단단해지더라.

알고 보니 버틴다는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것이었다.


단단해지니 초라해지고 고단해지지 않더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자라나니, 그것이 결국 손님한테도 잘할 수 있는 여유로, 그것이 다시 서비스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손님에게 남는 건 나의 인상이다. 커피와 디저트보다 그것이 더 카페를 가끔씩 오래 가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미국항공우주국의 경비원은 '달에 여행 가는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가치를, 디즈니랜드 청소부는 '퍼레이드나 놀이시설 연출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사명감을 교육받는다고 한다.


 카페 나 혼자 하는 나의 사명감은 무얼까? 카페 하면서 무슨 사명감을 운운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오버같이 느껴지지만, 일단 좋아 보이는 건 따라 해 보기로 하자.


나의 사명감은 손님이 카페에 들르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고된 하루, 혹은 지겨운 일상에 잠시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커피와 디저트로 다스리고 일상에 집중하도록 그들의 인생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가끔씩 오래 보는 카페사장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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