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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Nov 21. 2023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마

카페경영과 육아의 공통분모

나는 초, 중, 고를 모두 카톨릭계 미션스쿨을 나왔고,

남편은 군시절에 주일마다 성당을 다니며 세례까지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무신론자인 부모와는 달리 초등 5학년 첫째는 종교인이다. 일명 이영지교.


아주 열혈신도이다. 첫째에겐 이영지가 롤모델 수준을 넘어서서 인생의 멘토이자  영적지도자, 그루 같은 존재가 된 듯하다.


최근, 이영지는 월드투어 중이다. 가장 최근 공연지는 홍콩.

이라고 딸에게 전해 들었다. 네이버기사가 아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음은 물론 특유의 제스처나 말투도 따라 하더니 외모도 닮아지고 있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하지만 엄마아빠의 생일은 항상 헷갈려한다. 음력도 아니건만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공부보다 건강이 최고, 밝고 건강한 게 중요하지.’ 라는 뻔한 소리를 달고 살았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개떡 같은 수학점수를 숨기려다, 그걸 또 어설프게 숨겨서 들키고, 매일 딸아이의 그지같은 책상을 치워주다 보니, 육아관이고 나발이고 그렇게 나는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어간다


일찍이 오은영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모름지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 얘야, 호기롭게 육아관을 내세웠지만

제발 좀 노래 부르지 마!

제발 춤 좀 추지마!

라고 아이를 향해, 단전에서 괴성을 뿜어낼 때 나는 아줌마가 아닌 아저씨가 된다.


아니, 노래 부르지 말고, 춤추지 말라니


예전 파올로 코엘로 작품들이 국내에서 한창 유행하던 때 그의 소설 ‘11분’을 읽고

‘그래 자고로 사람은 춤을 추고 살아야 해, 춤추는 인생을 살아야 해!‘하며

플라멩코 학원을 등록했던 나인데..


아니, 노래 부르지 말고, 춤추지 말라니,


’딸아, 너는 춤추는 인생을 살거라‘ 하면서

어린 나이부터 발레학원, 방송댄스, 폴댄스 다 섭렵하게 했던 나인데..


하지만 당신이 우리 집에서 반나절만 살아 본다면 분명 당신도 내 맘을 십분 이해하며,

급기야 당신도 제발 춤 좀 추지 말라며 괴성을 지르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딸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마


제발 그만, 노래 좀 그만 해

귓속이 웅웅 거리다 두통이 생기기 일보직전이야!


딸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마


제발 춤 좀 추지마

스우파는 이제 끝났어

우리 집 거실은 댄스 배틀한 곳이 아니야!


시험 하루 전날의 책상을 보며 나도 모르게 무신론자이지만 신을 찾게 된다 ‘ 신이시여, 이 아이에게 정녕 사교육을 시켜야 하나요?‘







문득, 영화에서 장면과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처럼

딸에게 했던 말들이 내게로 돌아온다...



태사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마


네가 먹고 싶은 디저트를 만들면서 카페손님들도 맛있어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지 마

베이킹은 너의 취미활동이 아니야.

손님이 원하는 것을 해.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고 간혹 그것의 가치를 알아주는 손님의 코멘트에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다른 디저트카페에 없는 것을 하겠다며 새로운 디저트를 연구해 내놓지만, ’ 손님들은 이게 뭐예요?‘ 하며 물어볼 뿐 구매하지 않는다. 그런 에너지 낭비, 돈낭비도 없다.


새로운 디저트 대신, 차라리 기존 메뉴에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낫다. 제발 하던 거나 잘하자.

음료에 더욱 힘을 주는 방법도 있다. 디저트 카페도 카페이다. 결국 음료를 많이 팔아야 많이 남는다.


누가 왜 카페를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내 취향에 부합되는 업무를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카페 손님)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있어빌리티 하게 말했지만, 좋아하는 디저트가 비슷하다고 내 취향이랑 비슷하다고 단언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웃긴 일인가


카페 단골손님들 조차 새로운 디저트가 많아서가 아니라, 나의 인사와, 나의 눈 맞춤과, ‘추운데 여기까지 오셨어요‘ 하는 나의 말 한마디에 다시 들르는 것이다.


알면서도 힘들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 원단폭격이 내리듯 화를 쏟아내고 온 날 더 느낀다.


카페를 한다는 게 육아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한다.


카페는 취미생활이 아니니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지만,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라고 할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



엄마 닮아 베이킹 금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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