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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Jan 30. 2024

잘 버티기 위하여 글을 씁니다

야쿠르트 아줌마 찬가

고백컨데..

난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동경이 있다.


길을 걷다, 혹은 창밖으로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용 전동카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는 것을 보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게 된다.


이 구역의 지배자 같은 외유내강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온화하면서도 에너제틱한 상반된 매력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춘하추동 바뀌는 유니폼도 깨나 멋지다


사실 그러한 외형적인 것보다 그녀들을 우러러보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아이들 먹을 야쿠르트 한 보따리를 사던 중이었다.

우연히 야쿠르트 아줌마가 결제하시는 것을 무심코 눈으로 좇다가, 그녀의 핸드폰화면에 이번달 매출금액을 보게 되었고,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때부터 야쿠르트 아줌마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총매출이 순매출은 아니시겠지만, 20~25% 마진율을 계산해 보더라도 그렇게나 많은 돈을 버는 줄은 몰랐다. 분명히 내가 구매자인데 머리를 조아려야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 후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녀들의 주위로 오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해가 바뀌고, 첫 영업일부터 그 주 내내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고, 곤두박질치는 기온과 함께 매출도 곤두박질치니, 정초부터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또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긴 기다림에 보답이나 하듯, 드디어 카페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선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손님인가…

싶었지만, 야쿠르트 아줌마가 주문한 우유를 배달해 주러 오셨다.


손님이 아니어도 반갑다. 이 엄동설한에 누구라도 와주기만 한다면야

이토록 사람이 그리웠던 것일까..(따흑)


야쿠르트 아줌마와 새해덕담을 주고받자마자,

누가 먼저랄 세도 없이 앓는 소리 배틀이 시작됐다.


-매출의  2/3이 사라졌어. 거리에 사람이 없어

-어제는 커피 판 것보다 제가 마신 게 더 많았어요




이윽고 야쿠르트 아줌마는 전동카를 끌고 지구 끝까지도 갈 것 같은 특유의 행동력과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얻은 정보력으로 각종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 동네를 휩쓸던 재개발 이슈와

역앞 청년 창업자를 위한 영스케어 사업이 깜깜무소식이 되어버린 것도,


이 근방 행정타운 앞 번화가의 늘어만 가는 상가공실을 비롯, 주상복합 아파트의 부실공사 등등

구도심의  불황이슈들을 요약하여 전달해 주신 덕택에 암울해진 경기침체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으시더니

내가 사는 아파트의 분양가부터 현매매가까지

정권교체와 함께 요동치는 그 격동의 부동산 시세변동까지 실거주자보다 더 자세히 꿰고 계시니

세월을 정면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온 이의 연륜에 절로 숙연해질 따름이다.



그렇게 그녀는 내 고장 인천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몸소 겪어 온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웬만한 경제전문 유투버 동영상보다 실속 있는 브리핑을 마치며, 나에게 결국 경기는 오르내림이 있어 당장 힘들어도 또 올라갈 때가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누구나 하지 못하는 소리를 끝으로, 끝끝내 커피 한잔 드시고 가시라는 나의 권유도 기어코 마다하시고 총총히 카페문을 나섰다.




지금 유행하는 미라클모닝을 수십 년 전부터 일찍히 실천하시며 아침을 여는 그녀들, 야쿠르트 아줌마.


전동카를 끌고 어디든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도어 투 도어 서비스로 발로 뛰는 서비스의 선구자이자, 일찍이 배민보다 더 앞선 배달의 민족의 원형으로 서비스의 가장 최전선에서 일구어온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바이브는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하기에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록적인 폭염이나 혹한에도

하얀 천과 바람이 아닌

야쿠르트 전동차만 있으면 어디든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근면성실한 여자들.


그 매일매일의 길 위에서

그들 나름의 불안과 삶의 애환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결코 고단한 일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사람들 특유의 뚝심과 부드러운 강함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언제까지 1인 카페의 카페사장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디저트를 만드는 것도

커피를 내리는 것도

로스를 줄이는 것도

많이 파는 것도

이 일을 오래도록 하는 것과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카페는 누군가가 찾아와 주어야 하고,

찾아왔던 사람이 다시 또  한 번 찾아와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또 카페는 오랫동안 그곳에 있어야 한다.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를 쓰나 보다.


잘 기다리기 위해서

잘 버티기 위해서

글을 쓴다.


기다림이, 그리고 버팀이 글을 쓰는 동안,

풍성해지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계획과 다짐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뒤돌아온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기다림이,

버팀이,

가치 있게 변한다.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나는 카페사장의 고단함을 순간 또 잊는다.


그렇게

가늘고 길게 가는

카페사장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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