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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Jan 09. 2024

운수 좋은 날

카페 입소문의 실체

우리 카페의 오픈시간은 11시인데

대걔 12시가 지나,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번화가도 아니고, 주택가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카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오다가다 들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날은 여느 날과 사뭇 달랐다.

오픈하자마자 세 분, 곧 이어서 두 분의 손님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카페규모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서, 5명의 손님으로도 매장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매장을 가득 채우는 에스프레소 향기,

갓 나온 스콘과 쿠기의 내음,

손님들의 대화소리로 넘쳐나자 절로 흥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손님이 많으려나?

이 분위기 이대로 쭈욱 이어지기를 바라옵나니~

오랜만에 이른 개시로 텐션이 올라갔다.

매출상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세 분의 여자손님들(이하 OB) 그리고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친구사이인 듯한 여자 두 분(이하 YB)

그 두 팀의 칭찬배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장단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서로 질세라, 커피를 마시면서 연신 너무나 맛있다며 감탄을 쏟아낸다.

이 많은 종류의 디저트를 직접 만드시는 거냐

혼자서 너무 대단하시다 하나같이 다 너무 맛있다.

칭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팀이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에 온듯한 착각을 했다며 카페인테리어를 칭찬하면,

한 팀은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는 첨 먹어본다며 이제야 입소문이 났다며,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와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나의 디저트가 그렇게 세대를 아우르는 맛인가?

아, 그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나도 빛을 보는구나..


점점 맘이 웅장해진다…!!


그런던 중 OB 팀에서 이런저런 호구조사를 하시더니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잠시 전할 말씀이 있으니 잠시 설명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네? 전할 말씀이요?


그 전할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이 내민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교회 유인물이었다.


-곧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몰릴 시간이어서, 이거 놓고 가시면  제가 나중에  시간 날 때 읽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OB팀이 떠나는 것을 보자, 나는 본능적으로 설마설마하며 YB팀도 혹시…?  뭔가 유인물을 갖고 있지 않나 살폈으나 다행히 종이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전도하기엔 너무 어려 보여. 너무 해맑고 명랑한걸.


그저 디저트를 좋아하는 카페투어가 취미인 평범한 친구사이임이 분명했다.

이내 다 먹은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 YB에게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건네는 내게 YB는 해맑게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냐며 묻는다. 내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내 그녀들은 티없이 맑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교회 앱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회도 앱이 있다는 것을 첨 알게 되었다.

이것이 요즘 MZ의 신종전도방식인가?

너무 해맑고 명랑해서 전도가 전도가 아닌 줄 착각할 뻔했다.



무한경쟁의 시대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하지만 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K-자영업자!


-제 핸드폰에 있는 배달앱으로 주문을 받고 있는데 배달주문이 밀려 너무 바빠서(제발 바빴으면 좋겠음) 지금 너무 정신이 없는 상황이에요. 양해 부탁드려요. 정말 죄송합니다.




입소문은 커피와 디저트에 대한 호평이 아닌,

인적 드문 골목에서 혼자 1인 카페를 하고 있는 초보사장, 여자사람에 대한,

한가한 시간에 가서 2인 1조, 내지는 3인 1조로 공략하면 충분히 우리 교회 신자가 될 수 있을 거란, 인천 미추홀구 교회 사이에 암암리 퍼져있던 입소문이었을까


사전준비를 마치고 목표물을 향해 호기롭게 카페에 들어섰지만, 이내 라이벌 교회를 만나게 된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만큼 식겁했을까?


그들만의 알력 다툼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도를 위한 무한경쟁, 컴페티션이 우리 카페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사자인, 나만 모르게!




그 후로도,

그 후후로도,

많은 교회신자들이 우리 카페를 다녀가셨다.

대한민국에 교회가 많은 건 알았지만,

이 동네에도 이렇게나 많은 교회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나를 전도하기 위해 카페에 온 분들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신념과 의지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교회신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들은 또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밝은 톤과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 또한 매번 거절의 의사를 밝히며

하물며 그들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거절을 받을지를 생각해 보면서, 그럼에도 그렇게 좌절하지 않고 밝을 수 있다는 것, 에너제틱할 수 있다 것이 놀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후로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추어

거절했다.


우리 카페의 시그니처 르뱅쿠키를 드리며

한번 맛보시라고 하면서

정성스럽게 거절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카페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지금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서 언제까지 카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공손하게 폐업예고를 했다


큰소리보다 강한 건

앓는 소리였다.



이제 더 이상 카페 문에 교회유인물이 꽂혀있진 않는다. 아마도 입소문이 났기를 바라본다


그 카페에 가면

매번 거절하면서 지독하게 앓는 소리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어떤 사장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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