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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Jan 02. 2024

별 게 아닌 것들이 모여 별 것이 된다

‘나의 아저씨’를 보내며

‘나의 아저씨’가 영면에 들었다.


그는 내게 아저씨뻘 되는 나이차이가 아니지만(다섯 살 차이지만) 그는 나의 아저씨이다.


사실, 박해영 작가가 워낙 드라마 대본을 잘 써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라는 배우의 호흡, 음성, 발성을 거쳐 구현된 대사를 들으면서


맘이 처연해졌다가, 저릿하다가, 또 따듯해졌다가, 우울해졌다가 여러 번 그러기를 반복한 끝에,


내게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들어갈 때 사갈게..


만이 남았다.


워낙 명대사 대잔치와 같은 드라마였지만

내게는 저 대사만이 남았다.


나의 아저씨는 전형적인 K-차남, K-직장인이었지만 반듯하게 잘 자라난 어른이었다.

반듯하게 잘 자란 사람만의 다정함이 있었다.


나이 먹을수록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나의 아저씨는 모두에게 나의 아저씨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봄을 본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두광도 천수를 누리다 갔는데 왜! 왜? 왜..)




어느 날, 카페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들어왔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바스크 치즈 케이크가 안 보여서요.


-냉장 쇼케이스를 빼서 따로 안쪽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어요

-정말요? 아 , 다행이다… 없는 줄 알고 놀랐어요. 오늘 제 생일이라서 꼭 먹고 싶었거든요


생일이라는 말에 예쁜 미니초를 하나 같이 넣어주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소녀는 그렁해지다 못해 울먹이며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자기 생일을 챙겨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초를 서비스로 주셔서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미니초 하나에 굳이 그런 TMI를…(긁적긁적)

카페를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소녀의 외로움이 덜어졌기를 바랐다.


조각케이크 오천 원은 학생 용돈으로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오직 이 하나를, 자신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소녀에게

별것이 아닌 걸 주었는데

별것이 되어버렸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작은 카페 사장이 할 수 있는 게, 이런 별 것 아닌 거지.

순간, 나는 오천 원을 번 것이 아니라 오늘의 행복을 벌었다.



아무도 모르는 생일을 홀로 축하하는 소녀도 실은 외롭고, 나의 아저씨도, 지안이도, 나도, 우리 모두는 외롭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미덕은 그것이었다. 하나같이 외롭지 않은 등장인물이 없었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외롭다는 것을,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때로는 가슴 철렁하게, 때로는 덤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근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와 안심이 되어 다독여주는 기분이었다


외로움은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 재산여부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참으로 공평한 것은 세상에 오직 외로움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저씨’는 삶이 굳이 외롭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별 거 아닌 것에, 순간 기운을 얻고 또 살아가게 되니 말이다.


내가 매일

커피를 내리는 것도

디저트를 만드는 것도

별거 아니지만,

고카페인에, 달콤함에 기대어, 기운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기운.


별 거 아니지만,

별거 아닌 게 모여 별것이 되어 삶을 지탱한다.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별거 아닌 것들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또 한 번 나 홀로 카페를 하는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들어갈 때 사갈게..



별거 아닌 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사랑과 다정함이 응축된 저 말이..

자꾸 음성지원된다.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Unhappy new year…

or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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