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지인 Dec 19. 2023

살아 있다

keep calm and please be kind

나와 같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4개월 만에 10만 명이 줄어들었다. 폐업 철거지원 요청 건수 사상 최대,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연체규모는 13조 원을 돌파했다. 고물가, 고금리가 영세 소상공인을 직격 하면서 이제 벼랑 끝에 다다른 상황이다. 이자비용이 10% 이상 오른 상황 속에서 나 홀로 사장님 10명 중 4명은 내년도 최저임금 보다 낮은 수준의 사업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고물가, 고금리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꾸역꾸역 살아남아 불과 며칠 전, 카페 3주년을 맞이하였고,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다.



-사장님 번창하세요!

-감사합니다!

(네 저도 부디 꼭 제가 번창하길 바랍니다)


다음 날, 소상공인대출 원금상환이 이 달 말로 시작된다는 문자를 받는다.


아… 인생은 돌고 도는 회전목마, 오르락내리락 미끄럼틀


살아남았어도..

다시 살아남아야 한다.




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저마다의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슬픔들이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금 여기 있다.

나도 여기, 살아 있다.


매일 오전 11시면 카페 오픈을 알리며, 그날의 라인업을 인스타에 올린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매일 아침 카페 출근 전, 아이들이 등교를 하면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강아지 산책은 무조건 실외배변을 하는 시바견에게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필수루틴이다.

인간이든 개든 똥을 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아침햇살에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빨리 안 나간다고 눈으로 욕하는 중


올리가 달리면 달려야 하고, 멈추면 멈춰야 하고, 걸으면 걸어야 한다. 그렇게 올리와 보폭을 맞추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린다.

 카페 가서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고, 브런치 글감을 얻기도 하고, 주말등산을 계획하기도 하고, 어제 아이를 혼낸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아성찰이 별게 아니다. 올리와 함께하는 산책 그 걸음걸음이 자아성찰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올리가 응가를 하면, 순조롭게 산책이 마무리되며, 오늘의 중요한 일과를 하나 마쳤다는 작은 성취감이 동반된다. 동시에 나의 맘도 산뜻하게 정리된다.

과연, 내가 올리를 산책시키는 것인가, 올리가 나를 산책시키는 것인가?




나와 같은 ‘나 홀로 사장님’들이 4개월 만에 10만 명이 사라졌지만, 내 맘도 순간 위태위태해지며 휘청댈지언정, 결코 냉소적이거나 시니컬해지지는 말지어다. 그러한 감정은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뭐든 다 얻으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그냥 오늘은 어제보다 더 친절한 카페사장이 돼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뿐이다.


친절하게 말하는 것, 다정하게 대하는 것.

인간관계든, 카페매출이든,

나의 삶에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매출이 높아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올리와의 산책은 올리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었다.


카페에 나와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차례대로 수행하고, 카페에 들어온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작은 성취감들을 내 안에 추가추가해 가며,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그렇게 나는 살아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전 06화 단호한 디저트 카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