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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Feb 06. 2024

파블로프의 단골들

돈 말고도 얻고 싶은 것

갓 나온 쿠키와 휘낭시에를 쇼케이스에 진열하는 것을 끝으로 모든 오픈 준비를 마치면, 나에게도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준다.


혼자만의 티타임이라 쓰고 하루 일상을 깨우는, 하루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나만의 의식이라 읽는다.


밀크폼을 조금 올린 꼬숩한 우유를 약간만 넣은 진한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음, 이제 갓 나온 감태가 올라간 피스타치오 휘낭시에를 한 입 물면, 겉 바삭 속 촉한 식감과 함께 버터리한 내음, 피스타치오의 꼬숩함, 감태특유의 해조향까지 함께 입안에서 대통합의 강강술래를 춘다.


그렇게 탄수화물 대잔치에 혈당이 올라가면, 그제야 기운이 솟아난다. 호랑이 기운 나는데 이만한 게 없다. 거의 삼계탕과 동급이다. 이 힘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이내 하나 더 먹을까 말까 칼로리를 정면돌파해 볼까를 잠시 고민해 본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고민을 반복하지만 매번 아주 진지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혼자만의 치열한 내적갈등이 진행되는 동안, ㅇㅇ 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본격적인 카페 업무가 시작된다.

 

선생님은 항상 여느 때처럼 비슷한 시간에 오셔서 아아를  테이크아웃하신다. 그렇게 오늘의 첫 개시인 선생님이 나가시면, 곧 점심시간이군 한다.


여러 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들어와 제각각 다른 음료를 주문해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재빠르게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들을 해 나가면서 12시를 맞이한다.


나름 카페의 피크시간이 지나면, 살짝 긴장이 풀어지면서 여유가 생긴다.


보통 점심시간이 2시 정도가 지나면 근처 환경연합에서 단체로 티타임시간을 가지시는지 각자의 텀블러를 가지고 카페에 오신다. 한  분이 한데 모아 가져오시는 경우도 있다. 그, 혹은 그녀는 사다리 타기에서 진 것일까.


텀블러도 익숙해서 누구의 것인지, 텀블러의 주인과 항상 주문하는 음료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대표님의 아묻따 뜨아를 필두로, 아이스 콜드브루, 디카페인 콜드브루 라테, 바닐라라테, 제주말차라테 등이다.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늘 마시던 음료만 마신다. 항상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각기 다른 음료를 주문해도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입맛이란 한번 고정되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도 그런 걸..)


3시가 지나면 근처 실용음악학원 원장님이 연이은 수업 중 잠시 짬을 내어 허기짐을 달래러 카페에 들른다.


-사장님, 오늘 빅토리아 스콘 있어요?


그녀는 빅토리아스콘이 품절되는 일이 종종 있어서,  먹지 못하면 주말에 생각난다고 말해주는 나보다 더 우리 디저트를 애정해 주는 찐 단골이다.


그녀가 우리 카페에 오는 가장 큰 목적이자 이유인 빅토리아스콘은 고메버터스콘 위에 마스카르포네가 들어간 생크림으로 만든 샹티크림과 라즈베리크림과 브라운치즈까지 올린 디저트인데, 나름 카페에서 가장 밀고 있는 시그니처메뉴이다.


1. 스콘을 가른다 2. 샹티크림을 올린다
3. 라즈베리잼을 올린다 4. 브라운치즈를 올린다


그러나 슬프게도, 밀어도 밀어도 도통 밀어지지가 않으니..


대박, 중박은커녕 소박? 정도 라고 하기에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지만, 그 추종자들에게는 스스로 중독자임을 자처하며, 나름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매일 이것만 먹어서 손님의 심혈관계가 심히 걱정될 정도로 찾는, 나라가 허용한 마약과 같은 디저트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장격인 단골 원장님. 이거 저거 손이 많이 가는 비효율적인 메뉴인 빅토리아 스콘을 없애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그때마다 단골원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고작 디저트 하나에, 한입 넣자마자 ‘살 것 같아..‘ 하는 빅토리아스콘 중독자들의 한 마디에 빅토리아스콘은 어찌어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매번 같은 시간, 매번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파블로프의 단골들.


부끄럽게도 브랜뉴한 것들에만 열정을 갖고 좇던 시기에는 그것이 감사한 것인 줄 몰랐다.


디저트를 먹으러 혹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멀리서 찾아왔다고 하는 손님들이 다인줄 알았다.

여기까지 와주시다니, 그 수고로움이 감사하기만 했다.


하지만 파블로프의 단골들은 단순히 감사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 무엇이다.


그들의 루틴 안에

그들의 일상 안에

내가, 우리 카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어떤 ‘관계’를 의미했다.


돈 말고도 얻고 싶은 것,

돈 말고도 전하고 싶은 것,

돈 말고도 일하는 이유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매출이 인격이라는 말이 진리가 되어버린 자영업의 현실에서

미천한 나를 버티게 해주는

고된 노동과 기다림에서 견디게 해주는


나의 자부심,

나의 파블로프의 단골들이여.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통장잔고가 충분해도

기꺼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맘 속 깊이 갑진 새해소망을 바래봅니다.



나와 우리에게 서비스란 거래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도록 만드는 속임수도 아니다. 물론 훌륭한 서비스에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 우리는 고객의 신뢰를 다시 얻고, 그들이 우리에게 시간과 돈을 기꺼이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과 더불어 매일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서비스는 우리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아리 와인츠와이그 ‘전저먼스 공동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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