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카페의 주 고객층
일단 뭐든지 책부터 읽고 시작하는 저는
와인도 책으로 배우고
다이어트도 책으로 배우고
임신과 출산도 책으로 배우며
완독과 동시에 그것에 정통해진 착각에 도취되어
책의 내용과 현실의 괴리를 매번 깨달으면서도
어리석게도 매번 같은 짓을 반복하는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카페 창업을 앞두고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온갖 카페창업 서적을 탐독하며
점점 마음은 웅장해지고,
이미 카페사장이 된 듯한 느낌적인 느낌에 중독되어
더 열심히 창업서적을 찾아 읽었습니다.
카페창업서에 나와있는 대로,
1. 주 고객층을 설정하고 (디저트를 좋아하는 2030 여성)
2. 빈티지한 무드의 카페 콘셉트에 맞춰 일관성 있게 카페인테리어, 메인컬러도 정하고, 로고도 제작
3. 디저트 개발, 음료개발, 단가 산출, 가격설정까지
책에 나온 대로 하니,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역시 ‘독서는 진리’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딱, 개업 전까지였습니다.
이후 받아 든 성적표는 너무나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학원과 과외는 하지 않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모범생에서, 졸지에 전교꼴등이 되어 이러나저러나 어파치 성적은 바닥이니 제대로 놀아보자 하며 대관절 임시휴무 팻말을 붙인 채, 카페 문을 닫고 여행을 갔다 오는 날라리짓을 하기도 합니다.
오래전, 첫아이가 생후 6개월이었을 때,
생후 6개월 영아의 발달과정에 맞춰 수면교육을 했지만, 아이는 잠투정이 심하고 쉽게 잠들지 않아 저를 돌아버리게 만들었고,
왜 책에 나온 대로 했건만 아이는 도대체 자지를 않는건지, 급기야 ‘삐뽀삐뽀 119’의 저자를 증오하게 됐던 상황이 데자뷔처럼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읽은 카페창업서는 저와 같은 동네 골목의 작은 카페를 위한 창업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만 읽고 배웠고, 스스로 반전문가가 된 줄만 알았죠.
카페 창업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모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모아놓고, 그것만으로도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응당 작은 카페를 위한 창업서라면
동네 카페의 현실을 알려주고,
진상손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아닌 재방문을 이끄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오지 않는 손님의 이유를
사장인 ‘나 자신’에게서 금방 찾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손님이 카페에 오는 이유는
단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손님들이 동네 작은 카페에 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단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동선에서 가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카페의 타겟층인, 디저트를 좋아하는 2030 여성들이 SNS를 보고 우리 카페에 와줄 거라 생각했던 저의 생각은 개업초기에는 조금 맞아떨어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굳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찾아가야 하는 카페에 재방문할 확률은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상카페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세상은 넓고 카페는 넘쳐흐릅니다.
작은 카페는 주고객층이 성별과 연령에 의해서 나누어질 수 있는 성질의 유형이 아닙니다.
작은 카페의 주고객층은
나의 직장, 혹은 슬세권 안에 카페가 있기 때문에
오로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카페는 쉽고 편안해야 합니다.
디저트도 커피도 익숙한 내가 아는 그 맛에서 쪼오끔 더 맛나는 맛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쪼오금 더 맛나는 맛은 친절함에서 나오는 기분 탓 같은 것입니다.
괜히 오늘따라 커피가(혹은 디저트가) 더 맛나네?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입니다.
저희 카페는 개업부터 지금까지 스페셜티원두 프릳츠를 고집하고 있지만,
사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남이 타주는 커피입니다
남이 타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오는 것입니다.
남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타주는 그 커피가 당연히 더 맛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작은 카페는 타겟층이니, 주고객층이 사실 필요 없습니다.
직장인도 오고, 동네사람도 오고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오니까요.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도 옵니다.
모두가 소중한 나의 손님입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모든 손님을
단골손님처럼 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카페는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