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지인 May 07. 2024

빅토리! 빅토리아 스콘

비효율의 역설

프랑스산 고메버터를 넣어 만든 플레인스콘을 구워냅니다.

진한 버터풍미 가득한, 갓 구운 포슬포슬한 스콘이 식으면 반을 가릅니다.

반쪽이 된 스콘 위에 마스카르포네가 들어간 생크림을 휘핑하여 만든 샹티크림을 올리고,

직접 만든 상큼한 수제 라즈베리잼을 올린 후,

브라운치즈를 치즈그라인더로 갈아 듬뿍 올려줍니다.

이렇게 우리 카페의 인기 디저트 ‘빅토리아 스콘’이 완성됩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는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해 낸 빅토리아 스콘!


재료수급이 힘들고,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주문즉시 조리해야 하고,

테이크 아웃 시, 매장에서와 같은 온전한 형태로 고객에게 도착하기가 힘든 데다가,

무엇보다 다른 디저트들에 비해 마진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빅토리아스콘을 없애지 못한 이유는

이 작은 디저트 따위가 제게 많은 희열을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손님께서 아아 한 모금에 빅토리아스콘 한입을 넣은 순간, 탄식이 터지며

‘아, 살 것 같아’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휴가 나온 군인이 집보다 먼저 카페에 들러

빅토리아스콘을 먹고 귀가하던 그날이 기억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빅토리아스콘을 사갔던 연인이 기억납니다.


출산 후 첫 외출로 빅토리아스콘을 먹으러 100일 된 아가를 유모차에 태워 카페에 왔던 단골손님 성은님까지...






맨 처음 디저트카페를 개업할 때의 나의 포부와 야망이 한데 응축된 나의 야심작, 이름조차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빅토리아스콘입니다만,


카페도 결국 돈 벌려고 하는 것이고,

장사를 생각하면

빅토리아스콘은 없애는 게 정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카페에 와야 할 이유가 빅토리아스콘이라면, 당연히 그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카페가 아니어도 세상에 가야 할 카페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카페에 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가요. 마진은 다른 것에서 남기면 됩니다.


작은 카페는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일지라도 그것을 때론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효율적인 이유로 다른 가게에서는 절대 하지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몇 년째 가격이 그대로이고,

이 가격에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이 가게에는 바로 그런 게 있다! 하는 것을 손님들은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손님이 음료를 쏟더라도 새로 만들어 갖다 드릴 수 있고, 꼬마 손님이 오시면 무료로 우유를 제공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서비스를 드릴 때는 치사하게 가급적 구매액얼마 이상과 같은 조건을 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선물포장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손님이 원하시면 메뉴에도 없는 걸 해드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카페는 결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닙니다. 정량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장사가 안되면 안 될수록 더 그래야 합니다.


장사가 안돼서 너무나 힘들고, 특히나 수많은 결정과 고민 앞에서 사장은 항상 외롭습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사장 스스로도 점점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진짜 별 그지 같은 경우를 다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수록 방어적으로 나오게 되고, 손님에게 자존심 세우게 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친절하게 한다고, 손해 좀 본다고, 누가 만만하고 우습게 보는 게 아닌데도 왜 그리 인색하게 굴어대는 카페가 많을까요

도대체 그런 곳에 누가 가고 싶을까요

막말로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것을..



한때는 외국유학출신의 파티셰가 만든 디저트 카페도, 유명바리스타가 직접 로스팅까지 하는 카페도

망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오히려 그런 전문가일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스스로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전문성이 매우 높아서, 고객의 원하는 것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을 강조하는 식으로,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작은 카페에 주 고객층이 어디 있나요.

한 사람이 아쉬운 마당인데.


‘라테에 우유가 들어가나요?’라고 물어보는 손님도

우리 카페의 소중한 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은 그러한 손님에게, 수많은 카페들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항상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만 할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했을 때 고객의 뇌리에 기억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카페엔

아직 빅토리아스콘이 존재합니다.



이전 06화 내 꿈은 작아서 모두 다 이루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