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 기형도

나는 왜 이 시를 좋아하는가.

by 쉼표

조치원, 기형도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어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 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 번 열어보인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1960년에 태어난 기형도가 1989년 한 극장 안에서 뇌졸증으로 죽기까지 그가 살아온 장면들은 어땠는가. 돈을 벌러 나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다리던 유년 시절, 15살에 요절한 누이와 대학 생활에 목도한 독재 정권의 탄압, 그로 인해 희생되어 가는 동료들과 함구하고 있는 자신까지.그가 느꼈던 허무와 무력감, 뒤따라 온 자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외로운 사람들에 대해 멈출 수 없는 고통스러울만치의 연민이 좋아서 나는 아주 천천히 그의 시를 읽게 된다.


'조치원'을 읽으며 '사내'를 보는 시선과 안타까움과 체념한 듯한 분노를 읽을 때 나는 감탄하고, 또한 공감한다.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어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열차 안에서 사내는 달걀을 건넨다. 이 열차의 풍경은 80년대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청춘들이 떠나고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좌절했던 한 장면이리라. 1시쯤엔 대전으로 도착하는 이 승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기침조차 '젖은 담배 필터'같고 노곤한 육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것'일까.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 중 략 ---------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이번엔, 이라고 하는 사내에게 낙향은 처음이 아닌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닐 듯도 하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간 그가 '난폭' 해질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달리는 밤 열차의 차창 밖에 겨울 나무는 여전히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을 간직한 채 소망하는 어떤 계절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사내와, 열차 안에서 기침을 뱉어내고 있는 여러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서울의 폭력을 겪고 몸서리 치고 있는 이 사내에게도 소망하던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나무가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것처럼 사내도 세상의 난폭함에 놀라 이제는 조치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이들은 무엇에 그리도 놀라는 것일까. 그들은 소스라쳐 깨어나고 의심 많은 눈빛은 심지어 이제 그들의 일상적인 용품, 소지품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불안해 보이지만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편안한 자리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 이 열차에서 좀더 편안한 생을 다시 청한다. 그래서 그들의 꿈들은 고작 바닥에 떨어진 빵봉지와 같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나'의 삶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척이나 지쳐있지만 졸음마저도 질이 나쁜 성냥과 같아 꺼져 버리는 삶. 그래서 '나'도 사내의 '외투'를 이해한다. '낙향'하리라는 '외투'. 낙향하리라는 사내의 소망이 좌절되어(조치원의 삶에서도 희망은 없으리라..) 다시 서울의 거리에서 마주친다고 한들, 누가 사내가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힘이 없는 위안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사내를 비롯한 청년들은 애써 감출지언정 여전히 '결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견디어야 할 현실을 떠올릴 때 쓸쓸해 보일 수밖에 없다. 흩어지는 톱밥처럼 청년들과 그들의 결의는 쓸쓸해 보인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화자에게 사내는 이제 커다란 검은 새이다. 천천히 날고 있는 검은 새. 분명 그 자체로 힘이 있었을 검은 새. 그러나 현대 문명과 이 도시 속에서, 주어진 이 현실 속에서는 무력한 검은 새.


내가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화자가 그를 바라보는 그 시선 때문이다. 그와 열차의 승객들, 그리고 청년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다. 그들의 외로움과 피로와 소망을 창 밖의 겨울 나무와, 발 밑의 빵봉지와, 톱밥에비유한 것은 비유의 대상을 미화하지 않아서, 그들과 너무나 가깝고 어울려서 가슴이 아프다.


슬프지만 따뜻하고 체념하고 있지만 소망하고 있는 느낌의, 조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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