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잔나비

- 슬픔을 대할 때 우리는,

by 쉼표

잔나비 최정훈의 목소리는 참 따뜻하고 다정하다. 그런데 노랫말은 더 따뜻하고 다정하다. "인생에는 힘든 일이 있지만 그래도."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의 어두움이 있음을 직시하고 있지만 그 '그래도 괜찮아'라는 위안을 함께 전하는 노래, 이 '슬픔이여 안녕'도 그렇다.



이젠 다 잊어 버린 걸

아니 다 잃어 버렸나

답을 쫓아 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나는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또 좋아지고

자꾸만 아른대는

행복이란 단어들에

몸서리 친 적도 있어요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저 봐 손을 흔들잖아

슬픔이여 안녕- 우우-“

바람 불었고 눈 비 날렸고

한 계절 꽃도 피웠고 안녕 안녕

구름 하얗고 하늘 파랗고

한 시절 나는 자랐고 안녕 안녕




이젠 다 잊어 버린 걸

아니 다 잃어 버렸나

답을 쫓아 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삶을 쫓다 보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리둥절해질 때가 있다. 우리는 살아 간다. 인생 길을 천천히, 차분히 저벅저벅 걷다가 무언가를 갈구하게 되고 마음은 점점 급해진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차분하게 걷지 못한다. 쫓기듯, 달리듯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나는 무엇을 쫓고 있지? 내가 원하던 것이 무엇이지? 어느 순간 내 자신이 그저 쫓기기만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상실감의 크기는 너무나 크고 그 깨달음은 무척 갑작스러워서 ‘잊어 버’렸다는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갈구하던 나의 ‘삶’을 ‘잃어 버’린 것만 같다. 그토록 성실히 걸어왔건만 내가 걸었던 길 위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질문만 남겨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의 어떤 길목(전환점)에서 가슴이 쿵, 내려 앉는 듯한 상실감, 상실감보다는 허망감, 그리고 방향을 잃어 버린 것 같은 어지럼증을 느낄 때가 있다. 당신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그래도 우리는 또 하루를 산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나면, 그리고 나 홀로의 시간이 오면, 그래서 더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면, 내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 순간이 오면(집에 돌아가 누우면), 그때야 비로소 솔직한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나는 이제 정말 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 앞에 ‘슬픔’은 있고 ‘안녕’하듯 손을 흔들고 있겠지만 ‘안녕’이라는 말이 올 때도, 갈 때도 쓰이듯 그 손 흔드는 모습도 만남의 인사인지 작별의 손짓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는 그 마음은 ‘슬픔’이 ‘서 있다’가 아니라 ‘서 있을 텐데’로도 드러난다.)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우리 마음에는 슬픔이 찾아 온다. 어쩌면 우리 삶을 책으로 엮으면 상실과 상실의 페이지로 가득 채워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우리는 잃어 버리고, 아무리 사랑하던 것도 잃어 버린다. 간절히 바라던 그 마음마저도 잃어버린다. 슬픔은 언제나처럼 곁에 있다. 청년기는 삶의 길목에서 간절히 원하던 인생을 그리기 시작하는 첫 단계이다. 이제 그 앞에서 잃어버리고, 상처받고, 그럼에도 사회가 원하는 표정을 짓고, 그러다 자기 자신의 감정마저 또 잃어 버린다. 잃어버림은 인생을 거쳐 일어나지만 그 잃어버림의 시작은 청년기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또 여전히 잃어버림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마음을 먼저 견뎌냈던 사람들이 말한다.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참 단순하고도 어려운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그 자리에’ 두라는 것. 간절했던 소망도 사랑하던 누군가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꿈도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이제 그 자리에 두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갈 수밖에. 그리하여 그 자리를 지나쳐 ‘뒤돌아’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있으리라.


‘슬픔’을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다. 아무리 ‘슬픔’이 사람을 성숙하게 할지라도. 그렇지만 그렇게 겪은 슬픔은 슬펐던 그들을 피어나게 한다.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삶의 많은 진리 중에서도 ‘슬픔’이라는 진리는 나를 깊게 한다. 그것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게 만들며, 진지하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쉽게 남을 비난하지 않도록 하고 때로는 동굴 속에 나를 잡아두기도 하지만 또 동굴 밖으로 나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또 좋아지고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가기 위한 과정 중에 나는 내가 미워지기도 하고 이런 내가 가여워지기도 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도 하며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자꾸만 아른대는

행복이란 단어들에

몸서리 친 적도 있어요


아무리 ‘잃어버린 것들을 잃어버린 그 자리에’ 두려고 해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아른대는 그 행복에, 다시 몸서리 치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을 잃어버린 것인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인지, 이 행복이 나의 것인지 나의 것이 아닌지, 명확하지 않은 그 ‘아른대는’ 것들은 인생 속에서 계속된다.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저 봐 손을 흔들잖아

슬픔이여 안녕 우우'

바람 불었고 눈 비 날렸고

한 계절 꽃도 피웠고 안녕 안녕

구름 하얗고 하늘 파랗고

한 시절 나는 자랐고 안녕 안녕

바람 불었고 눈 비 날렸고

한 계절 꽃도 피웠고 안녕 안녕

구름 하얗고 하늘 파랗고

한 시절 나는 자랐고 안녕 안녕


그리고 이렇게 살다 보면, 행복이 아른대 몸서리 치기도 하고 다시 잃어버린 것을 그 자리에 두기도 하고 뒤돌아보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하면, 이렇게 상실과 슬픔이 처음인 듯 계속 걷다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까지 오게 되는지도 모른다.


눈 비도 날리고 꽃도 피우고 계절과 시절이 가며 이렇게 인생 끝자락까지 자라면서.

언제나 슬픔은 ‘안녕’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슬픔이 오는 건지 가는 건지. 그리고 인생에 슬픔은 줄곧 길목 길목에 서 있지만 또 언제나 우리는 생경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슬픔에 대해 알고 있다.

슬픔은 어쩌면 우리를 피어나게 하는 것, 우리는 슬픔을 앎으로서 피어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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