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전하는 5.18
나는 수업 시간, ‘소년이 온다’를 두 번 소개했다. 2018년 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책을 추천하며 한 번, 2024년 5.18 계기 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으로 역사 선생님이 주신 자료와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한 번. 두 번 모두, 아이들 앞에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소년’의 죽음에 대해, ‘소년’을 죽인 이들의 잔인성에 대해, 그로 인해 여전히 흐르고 있는 이 슬픔에 대해 말하자면, 울컥 솟아나는 그 감정을 숨기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소개하며 읽어 주는 몇 구절, 낭송하게 하는 몇 구절에서 몇몇 아이들은 놀랄 만큼 빨리 그 소년의 마음을 함께 느낀다. 그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어리고, 낭송하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잃어버린 한 ‘소년’과 ‘소년’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으로만 읽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소년’의 상실은 이 소설을 몇 번을 읽어도, 어쩌면 읽으면 읽을수록 더 가슴 아파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든 그 가슴 아픔이 먼저 우리를 압도한다. 이렇게 큰 슬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읽은 지 한참이 지나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생생한 이 가슴 아픔. 이 가슴 아픔은 어쩔 수 없이 이 소설, ‘소년이 온다’의 정체성, 다른 질문을 떠올리기 전에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것, 어쩌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어떤 것이 아닌가.
이 소설은 6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1장(어린 새)은 ‘너’로 불리는 소년, ‘동호’가 친구 ‘정대’(정대의 시신)를 기다리며 ‘상무관’에서 계엄군에 희생된 시신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 상무관에는 수피아 여고 3년인 은숙 누나와 충장로 양장점 미싱사 선주 누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휴교령으로 내려온 진수 형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너’(동호)는 ‘너’의 집 사글세 방에서 살던 친구 정대와 정대의 누나 정미를 떠올린다. 어머니와 작은 형, 아버지가‘너’를 집에 돌아오라고 하고 ‘너는’ 계엄군이 오기 전에, 오늘 저녁에 돌아기겠다고 약속을 한다. ‘어린 새’는 친구 정대를 눈 앞에서 잃은 소년(동호)가 친구를 기다리고 무참하게 학살된 사람들의 혼을 지키다가 5월 27일, 탱크를 끌고 시민군을 학살하러 온 공수부대에게 현장에서 총살되기까지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1장에 등장한 정대(2장 검은 숨), 은숙(3장 일곱 개의 뺨), 진수(4장 쇠와 피), 선주(5장 밤의 눈동자), 동호의 어머니(6장 꽃 핀 쪽으로)는 차례로 각 장에서 그날(시민군이 완전히 패배하고 도청이 점령된 날)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의 순서로 보면 1, 2장은 같은 시기를 다른 화자가, 3장부터 6장까지는 5.18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이야기가 흐른다. 에필로그는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느낌인데, ‘에필로그’가 아니라 ‘7장’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5.18은 무엇인가. 우리는 ‘폭력’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먼저 떠올리는가. 5.18을 떠올릴 때 첫 번째 감정은 무엇에서 시작되는가. 모든 폭력 앞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먼저 느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이 ‘깊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하는 분노와 ‘결국 삶도 역사도 가치가 없는 것인가’하는 허망함, 그럼에도 ‘끔찍하게 악한 것들을 이겨내는 선하고 아름답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거의 한 권을 읽는 내내 울었지만 특히 나의 ‘슬픔’은 인물들의 ‘평범함’과 ‘소박함’, 그리고 ‘약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가 감정을 전하는 방식에 이러한 면들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적 속에서 너는 정대의 얼굴을 떠올렸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가 꿈틀거리던 모습을 기억한 순간 불덩어리가 명치를 막은 것같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너는 평소의 정대를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정대를 생각했다. 여태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정미 누나와 친남매가 맞나 싶게 못생긴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그런데도 귀염성이 있어서, 그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만으로 누구든 웃겨버리는 정대...
정대는 동호의 기억 속에서 이렇게 회상된다. 정대보다 먼저 희생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정미 누나에 대한 묘사는 이러하다. 정대의 누나 정미는 동생을 공부시키며 자신은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언젠가 의사가 될 꿈을 품으며 (동생이 자신에게 미안해할 것을 염려하여) 동생 몰래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동호에게 지난 학년 교과서를 빌린다.
그렇게 잠깐 궁금했을 뿐인데, 그후로 자꾸 떠올랐다. 잠든 정대의 머리맡에서 네 교과서를 펼칠 통통한 손, 조그만 입술을 달싹여 외울 단어들. 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끝을 감싼 것 같은 노크소리
이러한 시적이고도 구체적인 표현,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에서 어떻게 열여섯 소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가.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끝을 감싼’ 이라는 표현에서 소녀의 조심스럽고 연한 얼굴과 마음과 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떠올리고 그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어떻게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