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보들이. 23.02.17.
-아무리 말해도 고치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다고 믿고 싶다.
방학이라 여유가 있는 날들이다. 오전 10시 30분에 수영 학원에 갔다가 12시 15분에 온 너희를 위해 점심을 준비하고 너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외출 준비를 한다. 너희의 식사가 끝날 때쯤 나는 머리를 말리며 양치를 하라고 다시 너희에게 말하고, 두번째 말할 때는 "양치하라고 두 번 말했어!"라고 경고한다. 너희보다 게으른 내가 너희의 양치가 끝나고도 머리를 다 말리지 못해 선심쓰듯, "색종이 접고 있을래?"라고 하고 여전히 반도 덜 마른 머리를 말리는 것을 중단하고 대충 옷을 챙겨 입는다. (아, 그래. 색종이 접기를 먼저 제안한 것이 나였다!) 옷걸이에 걸어 두지 않은 옷들과 높은 선반에 올리기 힘들다는 이유로 한 달 넘게 방치된 수납 상자가 드레스룸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시계를 보니 1시 8분. 피아노 학원에 가기로 계획했던 시간을 이미 8분 지났으나 오늘은 수영 학원에서도 평소보다 늦게 왔으니까. 2시에는 다시 수학 학원 차를 타야 하는 첫째 보들이가 피아노를 쳐야 하는 시간은 50분. 1시 13분인 지금 나가면 20분엔 도착하겠고 그래도 30분 넘게는 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 바로, 아이들은 양치도 하고 옷도 입었으니 이제 가방을 챙기고 외투를 입고 마스크를 쓰면 되겠다.
"보들아, 꽁꽁아! 이제 나가자! 꽁꽁아 형아한테 말 좀 해 줘"
9살 꽁꽁이는 늘상 그렇듯, "네!"하며 자기 물건을 챙기고 현관으로 나간다.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이제 막 생긴 자기 핸드폰을 들여다 보느라 형에게 나가자는 말을 전하지 못한다. 거실 창을 향한 식탁에는 수십장의 색종이가 널려 있고 그 앞에 앉은 보들이의 뒷머리가 보인다. 역시나 보들이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안 챙긴 것들이 있다. 내 양말, 내 외투가 어디 있었지? 핸드폰과 마스크. 마스크가 어디 있더라... 다시 이것저것을 챙기며 말한다.
"보들아 나가자고! 두 번 말했어!"
갑자기 발끈하는 보들이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말 안 했어요!"
1차 짜증이 밀려 온다. 나는 말을 했는데 이 아이는 못 들었다. 그래, 못 들을 수는 있지. 그렇지만 엄마인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본인이 못 들었으면 "못 들었어요, 기다려 주세요."라고 하면 될 것을 발끈한 목소리로 엄마인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니! 도대체 이런 적이 한두번인가 말이다. 더구나 못 들었어도 못들은 자기 잘못이지 자기가 발끈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나는 왜 보들이가 발끈하는지 안다.
이 '두 번 말했다는 말.' 이것이 보들이를 자극했을 것이다. 갑자기 거실에서 꽁꽁이가 우는 목소리로 "엄마!!" 부르더니 "형아가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화를 내요!"하며 나에게 온다. 나는 보들이가 화를 내는 이유, 왜 '두 번 말했다는 사실에 보들이가 민감한지' 그 이유를 알면서도 보들이에게 화가 난다. 2차 짜증이다.
"너는 왜 꽁꽁이에게 화를 내? 꽁꽁이가 꼭 너에게 말을 해 줘야해?"
보들이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나는 못 들었어요."
"못 들었으면 못 들었지 왜 화를 내냐고.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나는 '왜' 화를 내는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들이에게 언성을 높이며 몰아세운다. 보들이는 시선을 피하며 손으로는 선반에 있는 것을 잡히는 대로 만지작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3차 분노이다.
나는 이와 유사했던 상황에서 했던 경고를 반복한다. "너는 걸어와, 꽁꽁이만 학원에 태워줄테니까." 고집도 많이 부리지만 겁은 더 많은 보들이가 "싫어요." 한다. 오늘보다 더 화가 나는 날에는 이 "안 돼요"가 나의 감정을 또 자극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유치하고도 공격적인 말투로 나의 보들이에게 쏘아붙이곤 한다. "그럼 싫지, 좋겠냐? 누가 너한테 좋냐고 물어봤어?", "이럴 땐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라고 하는 거야."
쓰다가 보니 나 자신이 얼마나 가관인 줄 알겠다. 그러나 이 상황에 한 번 빠지면 감정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서 따라잡을 수 없어진다.
너무나 흔히 일어나는 우리 집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