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을 맞는 교사의 마음

교단 일기 1.

by 쉼표

교사에게만 엄격한 마음이라는 잣대


학생들을 보는 마음에 애틋함이 없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그럴수가' 할 수도 있겠다. 일반인들은 교사에겐 유독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첫 아이 부모 모임에서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담임을 했던 어떤 아이가 내가 그 학교를 떠나고 1년 뒤 자퇴를 했었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자퇴의 이유가 자신의 도둑질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더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약사인 남편이 그 아이에게 연락해 봤는지, 자기가 예뻐했던 아이라면 어떻게 연락을 안 해 볼 수 있는지를 물었다. 갑자기 토론의 장이 열렸다. 그 자리에 있던 네 부부의 남편들은 모두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라면 '당연히' 연락을 해 보았어야 했다, 냉정한 행동이다, 라고 했고 아내들은 모두 교사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선 내가 한 해에 만나는 아이들이 300명 가까이 되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마음을 주면 몇 해만 지나도 1000명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사랑을 준 것으로 나는 의무를 다한 것이다, 관계에 너무 몰입하면 상처를 너무 받아서 오히려 이 생활을 해 나가기가 힘들다, 라고 말했지만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사실, 아이들을 몇 년 만나든 어떤 것이 교사 생활을 하기에 적절한 마음 상태이든 그것과는 상관 없이 왜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가?


학교에 가서 다른 교사들과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나의 동지들 앞에서 나는 더욱 과격하게 말했다. 약사, 의사는 연로하고 몸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나오다가 안 나오면 전화해서 괜찮으시냐고 물어 보느냐, 공무원은 자주 오는 민원인한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안부 묻느냐고. 왜 교사들한테만 요구하냐고 말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관계


사실 이 항변에는 '교사'는 '직업'이고 '학생'은 업무 중에 만난 관계이며 교사의 업무 기간 동안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성적인 판단 외에 뭔가 억울한 감정 같은 것이 숨어 있다.


왜 그 고결한 마음(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의 마음)을 '교사에게만' 요구하느냐는 거다. '다른 직업'이 아닌 '교사에게만'의 의미가 아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교사라는 이유로 사랑하는가? 학부모는 교사를 교사라는 이유로 존경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직업 자체가 관계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나 '존경'과 같은 감정의 영역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몰아 붙인다고 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들이 교사로서 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무척 감사하다. 학생들을 맞는 선생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귀에서 '아이들을 맞으려니 설렌다', 거나 '사랑스럽다'는 문장을 발견하면 얼마나 뭉클해지고 감사한지. 사실, 교사로서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일들이 많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너무나 감사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도대체 얼마나 힘이 드는가. 나는 내 자식이니 사랑스럽지만 선생님은 무려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등에 지고 계시는 거다.


모든 밥벌이에 대한 감사


우리는 어떤 직업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식사를 하다가 당연히 엄마, 아빠가 음식 값을 내야 한다는 아이에게 유치하게도 일장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당연한 것도 감사한 거다, 엄마 아빠니까 사 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감사한 것이다. 우리가 사 먹은 이 떡볶이도 우리가 돈 냈으니까 사장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래도 감사한 거다, 이 쌀을 수확한 농부도 자기 밥벌이 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 덕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니까 감사한 거다. 당연해서 감사하지 않다면 세상에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다. 서로 열심히 자기 일하고, 서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다.


'사랑'이나 '존경'을 감정의 영역이라고 해 놓고서는 아이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모순이다. 이성으로 감정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해 놓고는 '감사한 일이다'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아이의 감정을 움직이려고 한다. 내 마음이 이러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교사가 훌륭한가.


사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매해 그냥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해도 아이들이 예뻐보였다. 나보다 등치도 큰 아이들, 심지어 고3을 담당했을 때 나는 어렸으므로 나이가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았건만 얼마나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마음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다. 덜 꼼꼼해서 학생들을 못 챙기더라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수업 능력이 덜 훌륭하더라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행정 처리에 미숙하더라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그 '사랑'이라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감정이어서 증명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를 보면 존경스러워지고 뭉클해지곤 했다.


이토록 개학이 꺼려지고 학생들을 보는 마음이 가라앉게 된 데에는 어쩌면 정말 그 '사랑'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작년 내가 맡았던 아이들은 대체로 총명했다. 적극적이고 밝고 개인적으로도 나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코로나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 때에 애틋한 문자를 보내기도, 교무실에 와서 큰 소리로 '사랑하는 선생님!'하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끝은 무참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다 서술하기엔 너무나 길다. 어쨌든 상처를 받았고 학생이 뒤늦게 사과를 두 차례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상처를 준 학생이라고 말할 것까진 없지만 그 외에 다수의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도 어쩐지 서운했다. 아이가 모르게 베풀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배려임에도 정말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아이를 볼 때,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여러 차례 진심으로 위로했던 학부모가 졸업식날 눈 인사도 하지 않을 때, 졸업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눈길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대다수를 볼 때, 개인적인 시간까지 고민해 가며 학습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지원했던 학생이 졸업하는 날까지 '감사하다'는 인사가 없었을 때. (물론 감사하다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공들였던 학생과 학부모는 감정이 없고, 이 아이에게 특별히 더 해 준 것이 없는데 하는 경우 오히려 더 감사함을 표했다.)


그저 교사니까 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였고 학생이나 학부모의 인사를 받는 것이 내가 한 담임교사의 역할의 성적표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가만 앉아 있다는 이유로 마냥 학생들이 예쁘지가 않다. 무엇을 해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마음이 설레고 의욕이 생기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의무는 할 것이다. 그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므로 행동에 큰 변화는 없을지 모른다.


'사랑'이 빠진 교사가 느끼는 회의감


교사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싫은 이유는 사실 교사를 '직업'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억울함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랑'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해 놓고선 '사랑'이 빠진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는 나는 얼마나 모순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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