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께서 유산 후 세 달은 푹~쉬어주라 하셨지만, 세 달을 다 채우기도 전에 생리가 터져버렸다. 나처럼 생리주기가 불규칙한 사람이 배란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생리 3일차쯤부턴 배란유도제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생리를 그냥 흘려보내면 다음 생리는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다시 임신을 준비하고 싶었던 나는 ‘조금은 일찍 가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원장님은 “이 정도면 다음 임신을 준비해도 된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지난번에 유도제만으로 임신이 되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약을 사용해서 자연임신 시도를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내 경우 배란유도제가 몸에 엄-청 안 맞는건 아니었지만 종종 두통을 야기했다. ‘그래 뭐 내 몸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건데 편할 리가 없겠지’ , 약을 먹는 5일간은 어쩔 수 없이 두통약을 먹으며 버텨냈다.
배란유도제를 먹을 때 주의할 점은 나처럼 평소 생리주기가 긴 사람도 약발(?)때문에 배란이 몹시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약이 배란을 너무 촉진해서, 하마터면 시기를 놓칠 뻔했다. 중간 점검 차 내원했던 날, 원장님이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오늘 바로 숙제를 하라고 하셨다.
“예? 오늘요?”
숙제.
난임병원에서 아기를 만드는 행위를 부르는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웃겼는데, 곱씹을수록 기가 막힌 표현이라는 생각, 나중에는 정말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너무 잘 지은 단어라는 감탄까지 들었다. 아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뚜렷한 행위는 즐기기가 어렵고, 숙제처럼 쫓기는 일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휴우.
뭐 그래도 유산 후 첫 숙제를 여차저차 마쳤다. 지난번엔 쉽게 임신이 됐었지만 원래 자연 임신은 그렇게 잘 되는 게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대를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료일이 다가오자, 마음의 준비는 조금이라도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임신 테스트기를 들었다.
' 유산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번엔 힘들 거야.
아니어도 실망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다졌는데,
결과는 또 두 줄이었다.
‘엥?’
기쁘다기보다 당혹감이 앞섰다.
‘이렇게 쉽게 또 임신이 된다고?
뭔가 잘못된 거 아냐?’
그 생각도 잠시, 곧바로 머릿속엔 피검사 악몽이 스쳤다. 1,2,3,4차… 수치를 들을 때마다 조금씩 희망이 깎여나갔던 그 지옥 같은 절차를 다신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피검사를 또 여러 번 할 것 같은 난임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네 분만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다. 나는 시험관처럼 호르몬 주사 처방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나 다시 아기가 온 것 같아.”
두 줄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에 부모님께 이르게 임밍아웃을 했다. 엄마 아빠 또한 뛸 듯이 기뻐해 주셨다.
“병원에는 가 봤어?”
“아니 이번에는 천천히 가려고.”
“아아.”
피검사에 목매며 수치에 흔들리던 지난 과정은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성격이 급한 나지만 이번엔 좀 참아보다가 주수가 어느정도 차면 초음파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맘 같아선 많이 늦게, 한 8주쯤 돼서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혹시 모르니 좀 더 일찍 가 보라고 하셨다.
‘하긴. 혹시 모르지.
운이 나빠서 자궁 외 임신 같은 경우가 생겼다면
빨리 알아야 하니까...’
그런 생각에 임신 5주 차쯤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아기집은 자궁 안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는 지난번에도 본 장면이라 그렇게 많이 감격스럽진 않았다. 이제 내 걱정은 ‘또 고사난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넘어갔다.
원장님께선 이제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아기가 정상적으로 큰다면 그때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