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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02. 2024

조용한 E의 이야기

친구들이 모였었다. 

MBTI의 성향에서도 극 E들만 모였다.

모인 이유는, 삶의 목표를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삶을 계획한다는 건 어려워!"

"뭐부터 써야 하지?"


한 친구의 고충이었다.

물론 나의 고충이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친구의 고충이기도 했지만,

20분 내외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열심히 써 내려갔다.


나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배우고 싶은 것.


다양하게 써 내려가는 노트에는 점점 빼곡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노트도 빼곡해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자기 PR시대라고 해도 과하지 않으니-

스스로를 표현하고, 스스로를 뽐내는 것.

친구들의 노트에는 다양한 목표들과 과정을 써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나의 삶의 목표는 하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놀랍게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목표로는 정말 맞지 않는 목표였지만,

현재의 내게는 가장 적절한 목표였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일상.

내 노년의 평범한 일상을 그렸다.


이른 아침.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를 시점. 6시쯤에 일어나서,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일어난다.

허리를 쭉 펴고, 두 팔을 펴면서 허우적거리다가,

미지근한 물에 차를 타고, 큰 창으로 나가 밖을 바라본다.

밖은 탁 트인 논밭 같은 곳이다.

몇몇 나즈막한 집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걸 보고 있다가, 신문을 보면서,

지난밤에 설거지해 둔 그릇들을 치운다.

그러다 보면 남편이 일어나고, 각자의 아침을 맞이한다.

정원을 가꾸고, 일기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오늘은 뭐 먹을지, 집밥 할 것을 생각하면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동네 산책을 한 번 하고

해가 질 쯤이면, 해가 저무는걸 잘 볼 수 있는 곳에 앉아서 다시 차를 한잔 마신다.


그런 나날을 보내면서 일상과 다른 여행을 가거나 손님을 맞이하면서

그날그날의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아무런 압박감 없이, 생각 없이

그저 그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노년이 나의 목표였다.



"에이- 그게 뭐야, 배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를 목표로 해야지."


노년에 스스로 일어나서, 허리도 필 정도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몸을 원한다.

좋은 몸은 필요 없다. 그저 나즈막하게, 바른 몸을 가진 건강을 원했다.

스스로 집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정정함을 원했다.

나즈막한 집들이 보이는 조용한 동네에서 살면서도,

아무 걱정 없는 독단적인 경제력을 원했다.

나의 남편과 함께 꿈꾸는 외롭지 않은 삶을 원한다.

책을 읽고 신문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삶의 총명함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 심심한 듯한 일상에서 평온함을 느끼길 원한다.

그게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된 것이다.

생각보다 쉬운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평범한 사람이 되기.  나의 목표였다.


20대의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주변에 사람이 넘치길 바랐고,

일상은 매일매일이 자극적인 이벤트가 넘치길 바랐다.

지금은 그런 왁자지껄한 일상을 맞이하기엔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MBTI가 내향적인 I로 바뀐 건 아닐까 했는데, 우습게도 여전히 E라는 사실이다.


조용한 E의 이야기.

하루하루의 평온한 일상을 목표를 정하면서, 나의 일상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보려고 한다.

나의 일기장이 되기도, 기록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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