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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09. 2024

심심하게 살아도 되잖아

 소소한 행복

난 내가 말야

스무살쯤엔 요절할 천재일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이제 나는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징그러운 일상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묻혔나

가끔 울리는 전화벨소리

두근거리며 열어보면

역시 똑같은 이상한 광고 메세지일뿐야

이제 여기 현실은 삼류영화속

너무 뻔한 일들의 연속이야

징그러운 일상은 멈춰 세우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거칠 것이 없었던 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틈에

작은 일에도 늘 행복했었던

예전 그대로의 모습 찾고 싶어


-체리필터의 'Happy Day'-


지금도 즐겨 부르는 나의 애창곡이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도 흥얼거리는 곡이다.

정말 나는 스무 살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았고,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20대는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았고,

세상에는 많은 특별하고,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보다 더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애를 썼다.

거창한 목표가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살다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쓸쓸한 사람으로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 거칠 것이 없던 내 모습이 나의 활기이고,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

30대의 중반을 보내고 있는 나는, 지난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참 애쓰면서,

열심히도 살았고, 힘들게도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잠도 4시간 이상 자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지냈던 나였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냥 평범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평범하다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

왜? 평범하면 안 되는 걸까?

꿈은 왜 거대해야 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체리필터의 해피데이는 패기 넘치고 열정이 가득한 지난 유년시절을

회상하게도 하고, 갈망하게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육아로 지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오열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뒤늦게 내가 보게 된 노래의 한 구절.


'작은 일에도 늘 행복했었던'


작은 일에도 늘 행복 해하는 건 요 근래에 들어서이다.

10대와 20대는 성적이 월등히 올랐을 때, 상을 받았을 때, 누군가에게 자랑하며 뽐낼 것이 있어야 할 때

그때 행복했던 기억.

작은 일이 아니었다. 인생에서의 이벤트들에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작은 일에도 행복해한다.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한 다음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정돈한 집을 보면서

블랙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 입김을 불면서 

마실 때.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에 아이와 남편과 앉아서, 밥을 먹고 난 뒤,

'잘 먹었습니다.' 한마디와 싹 비운 그릇을 보면,

'아 - 오늘도 알차게 보냈다. 행복하다.'

였다.


진정 작은 일에도 늘 행복해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아이가 화를 내다가도, 재잘재잘 내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아이를 재우고 조용한 저녁에 게임을 하느라 나를 보지 않는 남편이 

그냥, 문득,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정말 뜬끔없지만, 그런 행복감이 있다.

.

오히려 다이내믹하게 굴러가던 20대에는 행복보다는 좌절감과 우울감이 더 많았다.

잔잔한 일상에 대한 염증으로 자극만 찾아서 그럴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어디론가 가고, 값비싼 무언가를 사야 하는 - 그래야만 행복하고

내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지금은 그냥 심심한 게 좋다.

오늘은 뭐 하지? 하면서, 무심하게 책을 골라 읽고

오늘 이거 해야 하는데- 하면서, 앞치마를 매고 집안일을 하고,

무언가를 배워볼까? 고민했다가 게으른 나와 타협하는 나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나쁘지 않다.

심심한 하루 속에서, 작은 무언가를 하나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커다란 프로젝트를 끝낸 거보다 크고,

여운이 더 깊다.

.

어린 나이에 등단을 했을 때는 그 길이 내 길이 될 줄 알고 설레었는데,

그 설렘이 고작 일주일도 못 갔고,

책을 쓰는 내내 행복해하다가 출판하고 나니, 생각보다 만족감은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서 주변에서 칭찬해 줄 때도

좋은 곳에 취업했다고 주변에서 알아줄 때도

열심히 노력한 대가이긴 하더라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허탈감과 상실감이 컸을 뿐이다.

커리어, 이력서에 경력이 한 줄이 더 추가되었을 뿐,

한 사람으로서의 온전한 성취감.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움츠려 들었던 지난날들이었다.

.

인생은 심심해도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소소한 일상이 좋아요-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일말의 특별함이 너무나도 좋다.

깨달음의 성취감.

한 인간으로서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기에

너무 자극적인 것만 쫓다 보면 끝이 없다.

나의 행복은 내가 잘 안다.

기름때가 묻은 옷에 기름때를 지웠을 때,

재미난 책을 속독이 아닌 정독으로 마음으로 담았을 때

화려하지 않은 채소요리와 집밥음식을 먹으며 그 온기를 제대로 느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길 때.

그리고, 이런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현재. 나의 모습이 행복 그자체였다.

.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

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면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듯, 이렇게 가만히 정체되어, 고요하게 

조용히 조금씩 흘러가는 행복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게으름의 핑계가 아니냐.

거짓된 행복이다.

.

.

글쎄, 이것저것 다해본 나로써는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것 또한 마음의 여유와 풍요에서 올 수 있는

느긋함의,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심하게 노출되어있는 현대사회에 대하여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수도 있다.

sns는 팔로워수, 좋아요수등 모든것이 수치화가 되어서 판별된다.

그 숫자가 꼭 행복의 지수마냥 사람들의 기준이 나누어진다.

방구석에서 홀로 행복해하는 것은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다 생각한다.

.

내 주변에서도 그런다. 

집에서 하는 살림을 어디엔가 올려보고, 그 채널을 키워보다보면

'돈'이 될 것이다.

물질이 쌓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정설같은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다,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모였고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하면서 행복하는 것을 남들에게 뽐내기 위해 가공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그런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일로써 하는 것이지,

나처럼 취미가 아닐 것이다.

나의 취미를 굳이 시간과 공을 들여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지가 않을 뿐이었다.

.

가끔 나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을때가 물론 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 하면 행복이 곧 슬픔이 될 것이다.

사람의 다양한 시선 속에서 나의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행복을 자랑하기 보다는

내 주변 지인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할때가 있다.

물론, 말하고 나면 내심 부끄러울 때도 있다.

아직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철부지같은 모습에 말이다.

그래도 그건 일순간이며, 나의 행복은 매일매일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



심심하게 살아도 된다.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어디론가 떠날 필요도 없다.

주변에서 가진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

배우지 않은 내가 바보처럼 보일까봐,

어디를 가보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울까봐

남들 다 들고있는 것 하나 안들고 있어서 무시당할까봐

.

결국엔 다 남의 시선에 매여있는 이유라면 

남들이 해보고, 가져보고, 느낀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남의 행복을 따라하기 위해 나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필요는 없다.

그냥 남들은 저것에 행복을 느끼는구나- 하면서

나의 심심한 일상속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심심하게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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