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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30. 2024

'평범'이란 기준의 정의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기, 남과 비교하지 말기

삶의 목표를 정했다.

평범하게 살기.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목표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평범하기 때문에, 이런 온전함과 평화로움, 잔잔한 일상을 으스러트리기 싫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한 목표는

평범하게 살기.


그러다가 문득, 평범하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남들이 평범하다고 하는 직장을 다니고,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남들 하는 고민 다 해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게 평범하게 사는 거라 하고, 평범한 것일까? 내 생각은 다르다.


평범하다 :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다들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그 정도면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평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평범 그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그 이하의 삶을 보자면 이상의 삶인가라는 의구심에 휩싸인 채, 나의 소중하고도 소소한 일상을 놓치기 일쑤이다. 평범.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그렇게 내 이야기 같고, 긍정적으로 쓰일 때는 남이야기 같은 평범.


10대의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면서 늘 특출 나고 특별하기를 꿈꿨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랐다. 그러다 20대가 되고 나니, 내 인생에서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늘 특출 나고 특별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리고 30대에는 당연히 내 인생이니, 내가 주연인 것이고, 그저 조용하고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것이 평범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말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자.


평범한 삶을 꿈꾼다.라고 하면 다들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이미, 사람들에게 보일 나의 모습으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평범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삶은 좋은 직장과 좋은 가족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 평범의 기준은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회사 면접에서도 다들 가족관계, 자라온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평범한-'으로 이야기한다. 나도 면접을 보고나 가족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평범하다고 이야기했던 거 같다. 평범이란 단어는 그렇게 쓰였다. 그러다 보니 평범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기준으로만 쓰였다.

 군중 속에 있다 보면 나 홀로 못난 것 같기도 하고, 나 홀로 돈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생각에 울적해지고, 남들보다 사교적이지 못한 것 같고, 나 홀로.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주변에서 특출 난 사람들을 보고는 박탈감마저 들 때가 있다. 이는 당연스럽다고 하지만, 정작 느끼는 사람은 당연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평범'이란 단어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인을 둘러보고, 내가 주변인들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비교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평균이라는 말이 나오고, 군중 속에서 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군중 속에서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평범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평범함이라는 말을 잘 쓰고 싶어졌다. 사건 사고 없는 심심하고 조용한 일상을 유지시키면서, 나의 심신의 상태도 크게 요동치지 않고 잔잔하게 고요하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내가 생각하는 평범.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라고 하지 않는가,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하다고 생각한다. 그 평정을 유지시키는 것이야 말로 비범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함 = 평온한 심신


 기쁠 때는 기쁘고, 슬플 때는 슬프고, 화날 때는 화를 낸다. 평범하게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솔직해지고, 복잡할 것 없이, 내가 기뻐도 되나? 화내도 되나? 슬퍼도 되나?라는 생각에 잠길 필요 없는 그런 평범함을 꿈꾼다. 생각보다 원초적인 감정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정말 기쁜 일이 있는데, 이걸 기쁘다고 말하고 다니기에도 애매할 때, 생각보다 썩 기쁘지 않아서, 기쁜 일이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슬프고 화날 때는 더욱더 그렇다. 가끔은 내가 정말 화를 내도 되는 건지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볼 정도로 생각이 많다.

 나의 심신은 생각보다 평범치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라온 환경에서 느끼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온전한' 감정들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활도 평범하지 못한 일과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사람, 온화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느낄 때 생각은 빼고, 오로지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평온한 사람과 더불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포용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다른 이의 행동을 이해하려기 보다,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편안한, 평온함, 잔잔함, 큰 근심걱정 없는 일상. 고민거리라 해봤자,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오늘 저녁은 뭐 먹지. 하는 정도의 고민거리. 그런 평범함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평범함을 그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의 기준을 스스로가 세운 것이다.



  주변인에게 평범한 삶이 목표라고 했더니, 제각기 다른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은 직장. 슬하의 자녀, 내 집, 1년에 한 번 꼭 여행 가기. 돈을 많이 벌기. 기준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의 기준은 제각기 달랐다. 평범하고 싶다는 말은 곧 각자의 목표이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평범하게,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기만 하라고 한다.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그러다가도 학교에 들어가, 사회에 나가다 보면 평범하게-보다는 꿈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면서, 성공하는 삶을 살아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을 두고 보자니 참,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가끔 드라마에서도 자식들이 건강하게, 평범하게만 잘 자라라고 하더니, 이제는 왜 그런 말을 안 하냐는 대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비교를 하게 되고, 비교하는 삶이 익숙해지다 보니, '평범'이라는 말은 결국 그 집단속에서의 기준점이 되고 있었다. 그 기준점은 개인에 따라 상향되기도 하향되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평범하게 '대기업'을 가고, 평범하게 '연봉 얼마'를 받고, 평범하게 '내 집'가지고 싶다고 말을 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과 연봉을 말하면서 평범을 외치지만, 결코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자신 스스로 평범 이하의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아파한다. 뭐-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평범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의 상태이다. 대기업을 모든 사람이 가는 건 아니다, 희망하는 연봉을 다들 받는 건 아니다. 특히 자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구수 비례하여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준을 평범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평범의 기준은 결국 타인에게 맞춰진 프레임에 불과했다.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면, 동의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개념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평범이라는 단어는 누가 어떤 생각에 따라 쓰이느냐에 따라서, 평범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그 기준을 나에게 맞춰져 있는지,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지 생각해 보자.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평범함을 생각하자면, 스스로에 대하여 실망하는 날이 많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서 굳이 나를 실망시켜야 하는 건, 아니지 싶다.

 나를 기준으로 맞추어진 평범은 기분이 좋다. 내가 내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편안한 시간, 또는 나의 취미를 되짚어보는 시간도 마련해 준다.


 평범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의-가 아니 내가 할 수 있고, 나의 일상이 되어주는 평범함, '내'가 하였기에, '나'이기에 특별한 '평범함'에 즐겁고 설레는 것이다.


평범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것의 기준은 타인보다도 나에게 집중된

기준을 삼아야 할 것이다.

평범한 것은 외모일 수도 있고, 경제력일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일 수도 있다.

누구나가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정의할 수 있는 '특별한' 평범함이 있다.

내가 기준이 된 평범함은 남들과는 다르지 않다는 온전한 느낌을 준다. 그 온전함이라는 것은 다른 이와 다르지 않다는 안정감을 준다. 그 안정감은 삶의 만족을 높이고, 알지 못하는 불안감에서 해방감을 준다.

그렇기에 평범한 삶이 나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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