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한 생각 5.
난 금사빠 타입은 아니다. '한눈에 반했다'라는 감각은 내게 낯선 것이다.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이 사람이 가진 여러 장점들, 호감이 가는 면모들, 설레는 포인트들이 있더라도 나도 모르게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면 세상은 너무 무섭고, 나쁜 사람들도 많고, 나는 나약하니까.
댕이는 다르다. 얼마 전 갤러리 속에서 추억 여행을 하다가 댕이의 아기 때 사진을 보았다. 내가 솜뭉치만큼 작고 가벼운, 털이 삐죽삐죽한 아기 댕이를 서툴게 안고 있는 사진이다. 댕이를 처음 만난 날 찍은 것이다. 그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댕이는 처음 본 나에게 온몸으로 달려와 안겼다.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었던 작고 여린 아기 댕이. 그렇게 조그만 주제에 댕이는 겁도 없이 사랑을 주었다.
댕이가 우리 집 식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엄마의 강력한 고집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몇 년째 자취를 하고 있었고 본가에는 부모님 두 분만 살고 계셨다. 그런 집이 적적했는지 엄마는 언제부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아빠와 내가 쭉 반대했다. 나는 따로 나와 살고 부모님은 둘 다 출근을 하는데 개는 무슨 개냐고, 개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치만 결과적으로 엄마가 이겼다. 그나마 원래 키우자고 했던 레트리버는 극구 말려서 포기하고 대신 새끼 포메라니안 댕이를 데려온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머리를 싸맸다. 부모님이 출근해 있는 동안 혼자 집에 남겨질 강아지를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개 키우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텐데 알고서 키우겠다고 하는 걸까. 소식을 들은 며칠 뒤가 바로 추석이라 본가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세상에, 정말.... 무슨 개람.... 내심 입가에 차오르는 미소를 억누르고 있었음은 솔직히 사실이다. 그리고 비번을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댕이가 내게 달려와 폭 안겼고 나는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주책맞은 표현이지만 첫눈에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내가 그전까지 사랑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처음 겪는 방식으로.
사랑에 있어서 개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 댕이는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상처받지나 않을까, 저 사람이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닐까, 걱정하며 이것저것 따져보는 대신 마음을 먼저 활짝 연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마주한 인간들은 모두 방어적으로 세웠던 가시를 눕히고 속절없이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참 겁쟁이다. 겁이 많아서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는 거다. 그런 겁을 내려놓고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사랑의 비결임을 댕이에게 배운다. 말로는 쉽지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댕이를 보다 보면 또 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솔직히,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는 댕이의 외모도 한몫 하긴 한다. 정리하자면 댕이에게 배운 사랑의 비결은 첫째, '겁내지 말고 먼저 마음 열기'. 둘째, '외모'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