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한 남자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by 파르티잔


지난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소설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2018년에 출간된 이 책이 제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바로 주인공 키도 아키라가 재일교포 3세라는 설정 때문이었죠. 일본 작가가 과연 재일교포 인물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증이 샘솟았습니다.


소설은 변호사 키도가 미야자키에 사는 리에라는 여인의 기묘한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리에의 남편이 사고로 사망했는데, 장례식에 온 남편의 형이 "이 사람은 내 동생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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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리에의 남편은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왔던 위장된 존재였죠. 일본은 한국과 달리 주민등록 시스템이 덜 촘촘해서, 신분을 위조하거나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충분히 현실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에와 그녀의 남편은 미아자키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는 리에와 임업에 종사하며 그림을 즐겨 그리던 남자. 그렇게 사랑을 키우고 결혼했지만, 4년도 채 되지 않아 남자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죠.


그리고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리에는 혼란에 빠집니다. 키도 변호사는 죽은 남자의 진짜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추적을 시작합니다.


이 사건에 키도 변호사가 유독 몰입하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역시 재일교포 3세로, 고등학교 졸업 무렵 일본으로 귀화한 인물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와 일본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기에, 타인의 신분으로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키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을 겁니다.


소설은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상기시킵니다. 신분을 위조한 그 남자의 아버지는 살인자였고, 그 그늘 속에서 그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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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로운 신분으로 미야자키에 흘러들었던 것이죠. ["안 좋은 과거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남의 과거를 덧쓰는 거예요. 지울 수 없다면 뭐가 뭔지 모를 때까지 덧그리면 되죠." ]그 남자의 절박한 선택은 바로 이 문장처럼 설명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리에는 세탁된 신분의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여기서 소설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리에는 과연 누구를 사랑했던 것일까요? 이름도, 과거도, 심지어 존재 자체도 위조된 그 남자를 사랑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속에 숨겨진 진짜 존재를 사랑한 것일까요?


"아무도 타인의 실제 과거 따위, 분명하게 안다고 할 수 없다. 내 눈앞에 없을 때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아니, 설령 눈앞에 있더라도 그 본심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자만인지도 모른다."


이 문장처럼, 소설은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통찰하며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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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하면 꽤나 복잡하고 난해한 소설처럼 들릴 수 있지만,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훌륭한 번역 덕분에 이야기는 물 흐르듯 술술 읽힙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여름날 부담 없이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한 남자』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올여름, 『한 남자』와 함께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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