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복숭아는 사랑이다

소소한 일상

by 수련
이거 왜 이래요?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올라온 입 주변을 긁으며 어른들께 물었다.

나에게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복숭아 털을 만지고 피부 어딘가를 만지면 두드러기가 난다.

특히 입 주변이 그렇다.

입 주변이 벌게지면서 마구 가렵다.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재채기만 하면 다행이다.

가려워 죽을 것 같은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신의 장난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하필 복숭아다.

그것도 껍질이 반들반들한 복숭아 말고 털이 복슬복슬하면서 말랑한 그런 놈들 말이다.

그 덕분에 집에서 딱히 공주처럼 대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도 여름 한철 공주님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복숭아는 꼭 누군가 깎아줘야 하니까.

할머니든 엄마든 복숭아만큼은 껍질 하나 없이 깎아서, 먹기 좋게 잘라서 대령해 주셨다.


대학에 가면서는 여름 방학 때 집에나 가야 복숭아를 먹을 수 있었다.

엄마를 자주 만나기 힘든 40대인 지금은 복숭아 깎아줄 다른 사람이 필요해졌다.

집에서 지 방 청소도 안 하는 딸내미가 복숭아를 깎아줄 리 없다.

가질 수 없을 때 더 간절해지는 법.

나이 들면서 여름만 되면 이상하게 복숭아가 더 먹고 싶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복숭아에 아련한 눈빛을 자동 발사하게 된다.


이토록 복숭아를 갈구하는 내가 올여름에는 벌써 복숭아를 세 번이나 먹었다.

집에 갔다 먹어봤는데 맛있다며 가방에 복숭아를 싸 오고, 그 복숭아를 어디서 주문하면 되는지 알아오고, 과일 가게를 지나다 복숭아를 한 바구니 담아 오는 사람이 있어서다.

내가 복숭아를 만질 수 있었어도 아마 잘 안 먹었을 거다.

과일은 씻고 깎고 치우는 게 귀찮다.

그 모든 귀찮음을 감수하고서, 날파리 창궐을 극혐 하면서 수시로 복숭아를 깎아주는 사람.

내 마음대로 복숭아라 부르고 사랑이라 해석한다.

나만 출근한 오늘, 지금쯤 집에서 복숭아를 깎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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