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지자체 신입공무원이 또 자살을 했다.
우리부에서도 작년에 신사업부서에 배치된 9급 신입공무원이 자살을 했다.
최근 2년 사이에 우리 조직 내부에서도 공무원들의 자살이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은 모두 비통한 일이지만
20대 신입공무원들의 자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20대 딸을 둔 부모로서 참담함을 가눌 수가 없다.
그들은 수년간 부모와 가족의 뒷바라지를 받고 공부를 했을 것이다.
공무원에 최종 합격했을때 누구보다 기뻐했을 가족들을 실망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힘들게 들어온 직장에서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신입 공무원들이 많이 거쳐 간다. 그렇게 와서 시보를 떼고, 시보떡을 돌리고,
8급 승진이 되어서 다른 근무지로 발령되어 떠나간다.
내가 만난 신입공무원들의 공통된 특징은
똑똑하고, 예의바르며, 업무수행능력이 모두 뛰어났다는 점이다. 너무너무 예쁜 이들이다.
그렇게 꽃같은 친구들 어느 누구도 부적응과 괴롭힘으로 세상을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6급들은 더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가장 박봉인 9급들에게 더많은 업무를 전가하는 것은
내가 본 공무원 집단의 최대 병폐다.
문제는 공무원 집단의 폐쇄적, 보수적, 권위적인 위계질서로 9급들은 항변 조차 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명문대 출신으로 취업지원을 받으러 왔던 40대초반 여자 구직자가 생각난다.
그녀는 직장에서의 트라우마로 몇년째 재취업을 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에 퇴사를 했지만 가슴에 켜켜이 쌓인 앙금이 화석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가슴에 아직 분노감이 남아 있는 이유는,
부당한 상사의 횡포에 한번 제대로 맞서보지도 않고 퇴사했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사표를 내는 날 하고싶은 말이라도 다 쏟아내고 나왔어야 했던 거에요. 저라면 그 인간 낯짝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왔을 거에요.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 참지 마세요. 어차피 때려칠거면 침이라도 뱉어주고 나오세요.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나의 이런 조언에 스무살 초반 앳된 구직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러다가 동종 업계에서 매장되면 어떻게 해요?" 라고 묻기도 한다.
나는 이 꼬마 아가씨에게 울산 횟집 퇴직금 사건의 결말을 알려주며, 취업을 방해하는 행위는 징역5년 이하 또는 벌금 5천만원 이하의 중범죄임을 알려줬다.
얼마전 딸아이가 씩씩거리며 퇴근을 했다.
사장님의 부당한 야근지시에 마지못해 일을 하고 와서는 속상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딸에게 다음날 출근해서 사장님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 수틀리면 사표 던지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딸이 이곳에서 1년 정도 더 일을 해야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 수령하는데
이 제도를 악용하여 청년층들을 착취하는 사장들이 있다.(미안하지만 당신들은 사장님 소리 들을 자격이 없다.)
나는 딸에게, 우리 전체 인생에서 그 천만원은 없어도 되는 돈이라고 조언했다.
그 돈 때문에 딸이 스트레스에 방치되는 것은 내가 용납이 안된다.
딸은 다음날 사장과 결국 한판 붙고 왔다.
그후로 사장이 여직원 3명에게 찬바람이 쌩쌩 분다고 한다.
나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 시원하게 했으면 된거고,
계속 근무하는 것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사표 내고 이직을 하라고 조언했다. 반드시 더 나은 회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신입 마케터였던 딸에게 1년도 안되서 팀장직을 제안했던 건 회사였으니 그런 인재를 놓쳐서 아쉬운 것 역시 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딸은 사장님이 말을 안걸어서 더 좋다며 잘 다니고 있다.
그래도 나는 한번씩 딸의 기분을 살핀다.
한 공간에 칸막이도 없이 냉랭한 사장이랑 붙어 있는게 어찌 편하랴.
지금 내가 딸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켜보는 것,
언제든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딸에게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일까지만 버티거나 참으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직장이란 곳은 원래 그런 곳이야,
사장이란 자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
딴데 가면 뭐 다를것 같니?
그건 결국 벼랑위에 서있던 아이를 떠미는 꼴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인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안전밸트가 되어주어야 한다.
니 뒤엔 엄마,아빠가 있어! 그러니까 쫄지마!
어려운 시험 합격했다고 너무 과하게 좋아하지도 말자.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그저 담백하게 수고했다 말하자.
기회비용에 매몰되지 않도록 민감하게 지켜봐주자.
힘들면 언제든지 때려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자.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