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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21 '우울증 치료 일지' 20회차.

20회차. 유리멘탈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

폭식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고, 스트레스 해결 방법을 도저히 못 찾겠다.

왜 이렇게 혼자 날을 세워가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는 분명 나를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주셨는데 

대체 뭐가 모자라서 나는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하는 일이라고는 독서와 헬스였는데 그마저도 하기 싫어졌다.

의욕이 안 난다. 책을 안 읽은 지도 며칠 됐고, 헬스는 억지로 간다.

무기력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든 것을 다 미루는 중이다.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겠고 부담스럽다.

계획 세우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나였는데...

스트레스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가 찌르면 눈물이 왈칵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겨우 참고 있는 중이다. 삶이 전혀 행복하지가 않고 기다려지지가 않는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명히 뭔가 달랐는데... 터닝포인트가 생긴 것 같았단 말이다.

운동을 시작했고, 이제 내가 나를 변화시켜야겠다 했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급격하게 마음이 식은 걸까?

안 좋아진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챙겨보는데도 눈물이 난다.

드라마에 빠져 있는 시간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괜찮은데

끝나고 난 순간 너무 공허하고 감정이 급변하고 있다.

굳은 마음으로 도전한 헬스장에서는 아직까지 아무 소득이 없다.

운동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식이요법이 잘못된 것인지 한 달이 되도록

아무 변화가 없으니 더 이상 다닐 힘이 나지 않고 있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무너져서는 왜 그럴까.

늘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다.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이랄까.

친구들은 행복하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슬프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항상 못난 편에 서야만 할까.

생각이 많아지면서 생각을 감당하기가 버겁다. 너무 막막하고 부정적이게 된다.


-> 원래 동글씨가 예전부터 걱정은 되게 많았거든요.

-> 그래도 이렇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저렇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그런 편이었는데

-> 지금은 걱정도 많으면서 이제 굉장히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네요.

- 네.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가 않아요.

- 억지로라도 헬스장을 나가는 게 좋은가요?

-> 좋아요.

-> 뭐라도 하고 있잖아요. 해야 돼요. 억지로라도 움직여보면 이만큼 한 게 어디야.

-> 내가 이렇게 우울이 심한데 그래도 운동을 했어 대견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 이게 긍정적인 생각이죠.

-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죠?

-> 감정조절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 조절할 수 있게끔 약을 조금 증량해 볼게요.

- 2주 전에는 정말 파이팅 넘쳤었는데 갑자기 그러네요...

-> 2주 전에 파이팅 넘쳤으면 다시 또 그렇게 돌아갈 수 있어요.

-> 안 좋았지만 또 약 조절하고 약 잘 먹으면 그렇게 돌아가겠지. 이런 믿음이 필요해요 지금은.


약을 증량했다.

조금씩 약을 증량하고 멈추고 증량하고 멈추길 반복하고 있었는데 또 증량했다.

약을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얼른 낫기만 한다면 엄청난 양의

약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이 먹어서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리라.

약 기운이 맞았던 건지 그 사이 또 많은 변화를 시도했고, 많은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먼저 하루를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 새벽 기상을 시도했고,

새벽 기상 후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새벽 헬스에 도전했고 이에 성공했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6시에 헬스장에 도착한다.

헬스장 문을 6시부터 열기 때문인데 이 시간에 누가 헬스장에 가려나 했더니 세상에.

낮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6시 오픈에 맞춰 운동을 하러 오고 있었다.

나만 몰랐던 신세계였다. 내가 자는 사이에 사람들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같은 얼굴의 사람들을 만났다. 간단한 눈인사를 했고, 똑같은 운동 패턴을 이어나갔다.

사람들 속에서 으쌰으쌰 운동을 하려니 더욱 힘이 나고 무엇보다 건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서 다시 잠을 안 자는 건 아니었지만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고 집에 가서 한숨 잠을 자도 아직 오전인 신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일단 나가는 게 대견하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고, 그 힘은 매우 컸다.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은 운동.

운동 하나에만 집중해서 잘 마치는 걸로 목표를 정하자.

조금씩 유리멘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하나씩 조금씩 하다 보면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신기한 요즘이다.


20회차. 유리멘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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