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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20 '우울증 치료 일지' 19회차.

19회차. 네가 없는 나는

친구가 자살시도를 했다.

그 친구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해 본 적 없는데,

나는 정말 그에게 그만한 친구였었나.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오랜 세월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쭉 함께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항상 의지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하던 친구였는데

나는 그만한 믿음을 주지 못했던 걸까. 

한 번 더 챙겨볼 걸, 왜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를 자책했다.

그저 푸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난 듣는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 그저 나한테 다 털어놓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나처럼 마음이 괴로운 거겠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병원도 다니고 있고, 상담센터도 잘 다니고 있던 친구였다.

자살시도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시도로 끝나 다행인 그 순간을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나는 한 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우리 아까운 청춘이잖아. 나는 너 없이 못 산다고

너 그렇게 가버리면 난 못 산다고 펑펑 울었다.

친구에게 해줬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우리는 서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마음의 짐을 하나 풀어냈다.


나는 진료날 이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고 갔다.

당장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어떤 도움이든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스트레스를 한껏 받은 상태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였다.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엄청 기대를 하고 갔는데 선생님은 여태 본모습 중

가장 차분한 모습으로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그리고는 '동글씨가 많이 힘드셨겠네요.'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나는 선생님이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이런 말씀을 해주시기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쨌든 그 친구와 나의 관계도 결국 나만 아는 것이고,

나만이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나 행동이 있으니까 내가 스스로 뭔가

해결책을 찾아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겨내는 것도 내 몫이구나. 뭘 하든지 간에 누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행동은 이제 안 되겠구나. 그런 삶은 안 되겠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며칠 후 친구를 만나러 친구집으로 갔다.

긴장되기도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 놀랍게도 예상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계획을 엄청 많이 세워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근차근 세워 놓은 계획들을

실행해 나갔다. 그러다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루틴이 생기게 되는데 이미 습관이 돼

루틴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꽤 있었다.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었구나. 나도 더 분발해야겠다. 나도 좋은 기운 얻어가야지.

오늘을 터닝포인트로 삼고 함께 청춘을 불사 질러보기로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희망에 가득 차 생애최초로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 앞 헬스장에 3개월을 등록하게 된다.

실제로 살이 많이 찌기도 했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였다.

무료 PT를 받는 첫날부터 트레이너 선생님께 단단히 혼이 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 트레이닝을 받고는 좀 더 강도를 높여 

운동 코스를 짜보기로 했다. 2주간 꾸준히 나가서 러닝머신도 뛰고

자전거도 타고 근력 운동들도 하고 뭔가를 성취하는 기쁨을 나도 누릴 수 있었다.

2주 만에 다시 잰 인바디에서는 몸무게가 똑같고 근육이 빠지고 체지방이 더 늘어난

알 수 없는 결과가 나왔지만 말이다. 


-> 운동에서 많은 변화가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운동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좀 어떻게 되는지도 잘 체크해 보고요.

-> 꾸준히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건 되게 좋은 거니까요.

-> 몸무게 숫자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내가 뭔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했다는 게 의미 있어요.


그래도 기분 좋게 운동하려면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결과가 안 나와주니 아쉬운 건 사실이다.

몸무게 수치에 집중하지 말고, 꾸준히 나와서 운동을 한다는 것에 목표를 두자.

2주간 매일 2시간씩 운동하는 꾸준함을 보였다. 이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적이라 해두자.


우린 아직 젊기에 젊음이 아깝다는 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게 찬란한 청춘은 아닌데...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내가 어느 길 위에 서 있기라도 한 건지

자꾸 의심이 드는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누리는 모든 것들과 모든 감정들을 다 포기하더라도 

나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고, 내가 가족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아프면 아프면서 지나가고, 슬프면 슬프면서 지나가는

그런 희로애락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겠다.

함부로 약해지지 않겠다. 

혹 당신의 삶이 너무 힘들지라도 조금만 버텨 주기를...

당신이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이 그렇게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같이 힘 모아 버텨내기를.

네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으니.


p.s 미래에 이 글을 읽게 될 수도 있을 내 친구에게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엔 큰 힘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걸 아니...

그런 내가 너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나 또한 안간힘을 쓰고 있단다.

너를 통해 배우는 세상은 늘 즐겁고 행복한 일들 뿐이었는데 

혼자서 더 많은 아픔을 누르며 살고 있었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

살아 있으니 참 별 일을 다 겪었다. 그래도 살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헤어져보기도 하고 그 속에서 배울 점도 정말 많았어.

처음 시작한 수영을 금세 배우고 익히는 걸 보니 역시 넌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넌 뭐든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절대 잊지 않길 바라.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좋은 사람인데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풍기던 아우라를 잊지 못해.

넌 언제 어디에 있든 항상 빛나는 사람이었고, 우리들의 우상이기도 했어.

아픔은 잊고 인생 제2막이 시작되었다는 마음으로 멋지게 살아내자!

네가 무엇을 하든 널 응원해. 항상 네 편이 되어줄게 건강하고 또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건강한 멋진 어른으로 함께 성장할 내 친구여 영원하자.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또 고마워!


19회차. 네가 없는 나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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